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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7_5 김지혜_ 갑작스런 온라인 쌍방향 수업에서 교사의 방황 : 질풍노도 교사 일기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8. 13.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1] 

갑작스런 온라인 쌍방향 수업에서 교사의 방황 : 질풍노도 교사 일기

김지혜

 

온라인 쌍방향 수업이 2주 연속 지속되자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게끔 '시킨다'라는 교사의 행위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수업을 '한다'는 교사 홀로 앎을 전달하는 행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움직임과 분위기를 통해서 서로의 무언가를 '나눈다'와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온라인 쌍방향 수업에서는 사람이 만나서 영향을 주고 받지 못하는 제약 때문에 서로의 생각과 삶과 배움을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점차 줄어든다. 자연히 아이들이 받는 성장의 자극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선생님과 대면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하니, 아이들의 수업 태도가 온-오프라인 병행 수업을 할 때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이런 현상을 두고 선생님들은 우스개소리로 "학생들의 자체 방학"이라 표현하곤 하였다.

우리 교실은 <기호 3번 안석뽕>이라는 이야기책으로 온작품수업을 하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목요일에 가상 마을 대표뽑기 예선을 하고, 금요일에는 뽑힌 후보들을 중심으로 정당을 만들어 본격적인 선거 유세를 시작할 참이었다. 그 다음 주에는 마을의 실제 문제를 조사하고, 해결 방법을 토의하여 나온 방안을 아이들이 시청에 건의 할 계획이었다. 모두 대면 수업을 가정하고 짠 수업이었다. 그러나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의 조밀함은 다를 수 밖에 없어 프로젝트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온라인으로라도 공약 발표를 해서 선거를 하자"고 제안했다. 좋다고 대답하는 몇몇 아이들에게 힘입어 순진한 교사는 아이들이 대면할 때 처럼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공약 발표를 하기로 한 날, 발표 준비를 한 녀석은 고작 7명 뿐이었다. '대강이라도 발표하자'는 아이의 말에 교사의 맥이 탁 풀렸다. 프로젝트 수업에는 아이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참여의 분위기는 서로 '만나야' 형성된다. 고민 끝에 이 수업은 결국 2학기로 미루게 되었다.

예상했던 실망이지만, 이후 이상하게도 교사에게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 그들의 손으로 같이 만드는 교실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수업시간에 열심히 집중하고, 과제를 빼먹지 않는 군단을 만들겠다'라는 새로운 열망이 활활 타올랐다. 교사는 과제를 확인하기 쉬운 교과서를 펼쳐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이들이 온라인 쌍방향 수업 시간에 자리만 지키고 아무것도 안 하는 습관이 들어서는 안된다'라는 어떤 후천적인 사명감으로 아이들을 밀착 감시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켜세요.", "대답하세요.", "교과서 보여주세요.", "과제 다 할 때까지 못 나갑니다."

집중 보살핌을 당한 아이들은 오히려 점점 수업 시간에 카메라를 끄기 시작했고, 불러도 대답 없으며 선생님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아도 아이의 목소리에 귀찮음이 뚝뚝 묻어났다. 아이의 보호자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해보지만, 바쁜 보호자도 아이에게 무엇을 해 주지 못함은 매한가지다. 학교에 온다면 그 때 만큼은 아이들을 교실이라는 세상에 초대하여 함께 살아가겠는데, 각자의 집으로 퍼져버리니 아이들은 한 화면에 모여있지만 제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몇 번의 좌절과 함께 점점 삭막해지는 관계를 느낀 교사는 소통 없는 아이들에게 수업 과제를 강조하는 것이 어떤 효과와 의미가 있을지 고민한다.

금요일 오후, 화면뒤에 숨어 교사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아이가 학습꾸러미를 받으러 잠깐 교실에 왔다. 너무너무 반가운 마음에 아이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보고싶었다고, 뭐 하는지 궁금하고 안 보여서 걱정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에서는 하지 않았던 따뜻한 말들이 얼굴 보고선 먹먹한 가슴에서부터 튀어나온다. "너 선생님 싫어해서 내 전화 안 받는거야?" 교사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장난스레 물어본다. "아니요, 그건 아닌데.." 아이가 멋쩍은 듯 씩 웃으며 잡고있던 한 손을 빼서 머리를 긁적거린다. 아이의 웃음에 교사는 안심했다. 이래서 사람은 만나야 하나 보다. 만나지 않으면 인간 존재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다음날부터 아이는 카메라를 켜고 수업에 참여했다.

주말에 유럽인들이 북미대륙을 침략하여 원주민들을 개화하고 교육시킬 목적으로 세운 한 기숙 학교에서 700여구의 원주민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들의 교육에는 서구식 개화의 과정이 '성장과 발전'이라는 신념과 고집스런 우월감이 있었을 뿐, 원주민을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발생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아이들의 상황과 관심과 개별적 특성을 무시한 채, '이래야 해'라는 교사의 기준과 욕심에 모든 아이들을 맞추려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교육이 존재하지, 어떠한 기준과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넘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사람 교사는 마주한 '사람'에게 맞는 교육을 하기 위해 필요한 법이다.

다시, 아이들의 삶으로 눈을 돌린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교과서를 덮고 이야기책을 마저 읽어주었다. 요즘에 아이들이 몰입하고 있는 책이다. 학생들에게 배역을 맡겼는데, 수업을 듣나 안듣나 알 수 없었던 까만 화면의 아이가 제 차례에 맞춰 '옆집 아줌마'의 대사를 연기한다. 그 책에서 모르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 한 사람씩 친구들에게 퀴즈를 내는 수업을 했더니 녀석들이 쉬는 시간에도 자기들끼리 낱말 뜻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다. 한 학기의 쫑파티로 '건강 간식 잔치'를 하자고 했더니, 장기자랑을 하고 싶다는 아이가 여럿이다. 수학 문제를 느리게 푸는 아이는 피아노를 놀랍게 연주하고, 친구와 맨날 싸우는 사고뭉치는 태권도 품새를 신명나게 선보인다. 교실에서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조그만한 아이는 장기자랑으로 떡볶이를 만들어보였다. 오늘 아침도, 어제 저녁도 제 손으로 요리를 해 먹었다고 한다. 직접 만들었다며 엿도 보여주었다. 그 동안 교사가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한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고 걱정했는지, 부끄러운 날이었다. 아이들은 오늘 일을 글로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럼 오늘의 일을 포함하여 한 학기의 일을 학급신문으로 만들자"고 하였다. 방학식 날 통지표를 받으러 온 아이들의 손에 각자 정성스레 만든 학급신문이 들려있다.

 


교사의 품이 넓어지니 아이들도 한껏 신이 났다. 방학에도 우리의 삶과 소통은 이어진다. 그 중 하나로 지혜네노랑꽃집 운동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우리반 구성원의 운동 모습과 기록을 공유하기로 했다. 운동 하고 싶은 사람만 들어오라고 했는데 현재 12명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운동 모습을 나누는 중이다. 그 채팅방에서 '무조건 일주일 3번 이상 운동 후 공유!'를 외칠 생각은 없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담쟁이 덩굴처럼 엮여 더 튼튼한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가길 작게 소망할 뿐이다.

김지혜 | '지혜네 노랑꽃집'(우리반 이름)의 한 구성원 '노랑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신념으로 오늘도 흔들리고 흔들리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것 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더 경계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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