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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0_2 심은보_삶을 위한 교육이 되길 바라며

by 어린이어깨동무 2022. 5. 18.

[한반도 평화교육] 

삶을 위한 교육이 되길 바라며

심은보

 

5월 첫 주부터 밖에선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5월 첫 출근날, 한 시간 남짓 마스크를 벗고 걸어서 학교에 갔다. 오랜만에 콧속을 파고드는 아침 내음이 참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쩐지 어색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코로나-19에 갇혀 사는 동안 우리 삶에 아로새겨진 무늬들이 참 오래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도 분주하게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수업 과정에 모둠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현장학습도 떠나는 학교들이 늘었다. 또, 5월의 앞자락에 운동회를 하는 학교의 모습들도 곳곳에서 보인다. 모처럼 학교에 활기가 돌고 있다. 하지만 찬찬히 학교 안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동안 멈춰 서며 겪어내지 못했던 여러 문제들을 치열하게 겪어 나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학생과 교사들의 삶 속에 아로새겨 놓은 무늬들은 이제부터 우리가 잘 헤아리면서 치유해 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고, 며칠 전 인수위에선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국정과제 가운데 교육 분야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디지털 인재라는 낱말로 시작하며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경쟁 교육, 수월성 교육의 이야기를 안에 담아 내고 일방적으로 도구와 기술을 들이밀면서 내어놓는, 학생들의 삶은 빠뜨린 채 국가와 자본의 논리들을 무지하게 들이미는 모습들이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는 것일까.

 
학교란 무엇인가. 학교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교사로 살아가며 참 많이 묻고 또 묻는 물음이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학교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했을까. 경쟁인가? 학력인가? 기술인가? 코로나-19를 넘어서서 다시 일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학교는 다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경쟁인가? 학력인가? 기술인가?

 
제발 먼저 사람들의 삶을, 학생들의 삶을 잘 헤아려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인해 펼쳐졌던 일들에 대한 성찰이 먼저 이루어진다면 좋겠다. 그 속에서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과 상처들을 찬찬히 묻고 살펴가며 길을 찾아 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올해 나는 스물 일곱 명의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과 생활해 나가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은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학교에서 공부하기 어려웠던 시절을 겪은 어린이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해에 비해 한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일부터 함께 살아가는 일까지 쉽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 곁에서 담임교사로서 석 달째 함께 생활하고 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말 치열하게 교과와 학급살이를 통해 그동안 못 했던 공부들을 해 나가고 있다. 그것은 꼭 기초학력으로 대표되는 머리를 활용한 공부 만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언론이 요란 떠는 것만큼 학생들에게 머리의 시간만 빼앗긴 것은 아니다. 우리가 더 심각하게 살펴야 할 것은 몸과 마음의 시간을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함께 온몸으로 뛰어놀며 갈등도 겪어가며 관계의 힘도 키우고, 몸의 힘도 키워나가야 하는 일, 그 과정에서 서로 배려하며 지켜야 할 경계를 세우고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차이를 조정해 가며 무언가를 함께 해 나가는 일, 그런 과정을 통해 외로움을 넘어 사랑으로, 고립을 넘어 연대로, 갈등을 넘어 평화로 함께 나아가는 일... 

 

그런 일들을 삶을 통해 배워나갈 몸과 마음의 시간을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제부터 찬찬히 살펴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국어와 영어와 수학의 학습이, 인공지능이, 과학기술, 경쟁교육이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잘 헤아리고 치유하지 않으면 오히려 많은 어려움들을 우리에게 안겨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등교 수업 이후 학교가 겪고 있는 학교폭력 등 많은 갈등의 이야기들도 성찰을 빠뜨린 채 이렇게 지나가서는 안 되는 일 아닐까.

 

국가와 자본의 자리가 아니라 어린이들의 자리, 학생들의 자리에서 먼저 생각해 보는 교육이 되면 좋겠다. 인재니, 경쟁력이니 하는 이따위 용어가 교육에서 좀 사라져 줄 수는 없는 것일까. 학생들 ‘삶을 위한 교육’이면 좋겠다. 그런 교육이라면 학생들은 삶의 역량들을 제나름대로 갖춰가며 제 빛깔을 가꿔 갈 테니 자연스레 사회 구석구석에 필요한 인재가 길러지진 않을까. 


나는 우리 어린이들을 만난 날 ‘이 곳에 귀하지 않은 삶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했다. 교실이, 학교가 누군가만 특별한 곳이 아니라 모두가 귀하게 대접받고 대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삶 속에서 꾸준히 해 나가고 있다. 또 모두가 지금 이곳 이 순간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돌아보면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학교들이 멈춰 섰던 데에는 공장과 같은 학교 구조와 규모에도 까닭이 있다. 공간 재구조화 사업들은 온갖 예산을 쏟아부으며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작 학교 규모나 학급 인원수를 줄이는 일에는 별로 애 쓰지 않는 듯하여 아쉬움이 크다. 

 

교사의 입장에서 지나 온 상황을 돌아보면 우리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 수가 20명 아래로만 되었어도 좀 더 안전하게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을 인재로 기르겠다면서 그 미래의 인재들을 이렇게 대우한다는 것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으로 대우하겠다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좀 더 학생들이 제 삶을 가꿔가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학교가 바뀌어가면 좋겠다. 


또 하나 코로나-19로 우리가 함께 삶을 통해 확인한 것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협력과 연대, 그리고 함께 만들어 가는 평화의 이야기를 교육의 큰 내용으로 삼는 민주시민교육이 학교교육 안에서 자리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마치며 바라건대,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긴 무늬들을 부디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학생들의 삶 속에 코로나-19의 상흔들을 잘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또 하나 나는 우리 교육이 정부가 빛깔 좋은 용어들을 나열해가며 다른 마음먹는 교육, 그러니까 국가를 위한 교육, 자본과 기업을 위한 교육이 아니길 바란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삶을 정성껏 가꿔 줄 수 있는 교육이 되면 좋겠다. 간절한 마음으로. 

 

부디 굥교롭지 않은 대한민국 교육이 되길 바란다.

 

심은보 |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평화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란초를 배움터이자 삶터 삼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구호와 이론보다는 실천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믿음과 교육이 희망을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행복한 학교를 꿈꾸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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