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9. 11. 19. 09:39

[이슈]

새로운 터전에서 ‘제대로 된 평화혁명’으로 나아갑니다   

이기범

 

드디어 어깨동무를 오롯이 담을 수 있는 터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렇게 가까이 왔던 남북의 평화가 다시 질척거리고 있어서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쉽게 곁을 허락하지 않네요. 그야말로 ‘기나긴 혁명’을 거쳐야만 닿을 수 있나 봅니다. 과거의 남북 관계와는 또 다른 낯선 길을 열어갈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새 터전이 그렇게 각별하게 여겨집니다. 기나긴 길로 나설 채비를 할 수 있는 곳. 같이 걸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걷고 또 걷다 돌아올 수 있는 곳. 험한 봉우리 넘은 사연을 나누고 더 험한 봉우리 넘을 궁리를 하는 곳. 굽고 험한 길을 가다가 함께 모이고 먹고 웃을 수 있는 곳. 평화의 날을 맞이하는 잔치를 예비하는 곳. 새 터전이 기나긴 ‘평화혁명’을 이어가는 길의 시작이자 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뜻을 모아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건물을 살 수 있는 재원을 오랫동안 모아왔네요. 설립 초기에 임원들께서 밑천으로 내어주신 종잣돈과 회원들이 내주시는 후원금에 크게 힘입어서 푼푼이 돈을 모아왔습니다. 기꺼이 자비를 쓰면서 활동한 임원들과 내내 살림을 알뜰하게 챙겨온 사무국 활동가들 덕분에 쌈짓돈을 목돈으로 키워서 건물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아놓고도 우리에게 독립건물이 꼭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이사회에서 의결을 한 뒤에도 적합한 지역과 건물을 찾는데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매물로 나온 건물들을 보러 다니면서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데 따르는 책임감과 전망을 다져갔습니다. 앞서 세워진 국내외의 평화 공간들을 공부하면서 상상을 펼쳤습니다. 그 공간에 녹아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열망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터전에 어깨동무의 역사를 새기고 희망을 내다보는 구상이 무르익을 즈음 지금의 건물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건물이 그때까지 어깨동무를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터전이 환대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평화를 배우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환영하고,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다시 배움을 길어내는 일을 환영하는 공간이 되어야겠지요. 연대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선 ‘어린이 세상’을 펼쳐가는 데 함께 뜻을 모았던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과 ‘동거인’이 되었으니 더 멀리 갈 수 있는 날개를 단 셈입니다. 두 단체의 소통과 결합을 통해 평화 네트워크를 더 촘촘하게 엮어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상상과 개척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곳에 오면 일상의 관성과 기존의 합리성을 뛰어 넘어서 무모하고 황당한 평화의 가능성을 펼치고 다듬을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저만 하더라도 남녘 사회와 남북 관계의 앞날을 그릴 수 있는 생각의 자원이 소진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까지 해오던 방식으로는 공동의 삶의 질을 진전시키고 숙성시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상상으로 어떻게 평화의 지평을 개척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모여서 함께 이야기하고 나아갈수 있기 바랍니다.

 

▲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입구
▲ 교육공간으로 활용될 '안녕친구야홀'
▲ 북녘 친구들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평화자료실'

제 소망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런 일을 하기에 우리 터전이 넉넉한가라는 걱정이 듭니다. 하고 싶고 담고 싶은 일이 많다보니 공간 크기가 턱없이 모자라서 맥이 빠졌을 때 역시 구원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일하고 쉴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었습니다.

기나긴 평화혁명으로 글을 시작했으니 그로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D. H. 로렌스는 ‘제대로 된 혁명’이라는 시에서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라고 말합니다. 그저 재미로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엄숙주의’를 깨고, 웃고 즐기며 재미있게 무리 지으면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하고 조금 더 평화롭게 바꿔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제대로 된 평화혁명’의 걸음을 길게 이어가겠습니다. 앞으로 터전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라고 계속 격려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후원 역시 웃고 즐기며 재미있게 해주시면 더 큰 힘이 되겠습니다. 제대로 된 평화혁명을 위하여!

 


이기범ㅣ어린이어깨동무 설립에 참여하여 초대 사무총장으로 10년 동안 일했고, 현재는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남북의 어린이들이 교류하며 한반도 평화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함께 가기를 소망한다. 숙명여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저서로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 <한반도 평화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가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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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7. 8. 1. 14:21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어린 왕자가 전하는 평화 연대의 메시지


송태효


경험상 우리는 사랑한다는 것이 우리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생텍쥐페리, 사람들의 땅

 

생텍쥐페리는 1935파리 수아르(Paris Soir)지 리포터로 모스크바를 취재하고, 에어프랑스 후원으로 구입한 자가용 비행기 시문(Simoun)을 타고 지중해 연안을 탐사하였다. 그해 1230일 파리-사이공 비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신의 시문을 타고 이집트로 향하던 생텍쥐페리는 현지 시각 445분 카이로에서 200지점,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하여 사경을 헤매다 닷새 만에 베두인족에게 구조되었다.

 

그 처절한 기아와 갈증의 고통, 고독과의 사투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이방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텍쥐페리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사람들의 땅(Terre des Hommes)(1935)*의 제7사막 한가운데에서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생텍쥐페리는 구조대를 기다리는 긴장되고 간절한 상황에서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의 자신인 어린 왕자를 만났던 것이다. 이후 독일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여 망명한 뉴욕에서 그는 이 어린 왕자를 동화로 창작하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어른들에게 실천적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인간의 대지로 번역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전편인 사람들의 땅은 인질협상가, 우편비행사, 항공노선 탐사가, 특파원, 전쟁리포터로서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기록한 자전적 소설로서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mie Française)의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해 바람, 모래 그리고 별(Wind, Sand and Stars)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같이 미국으로 망명한 위대한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아들 장 르누아르(Jean Renoir)는 전쟁의 공포를 각성시키고 평화적 연대감을 호소하기 위해 사람들의 땅을 영화로 완성하려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쉽게도 그 과정의 기록만 남아 있다.


생텍쥐페리,사람들의 땅(Terre des Hommes), Gallimard, 1939


생텍쥐페리,친애하는 장 르누아르 (Cher Jean Renoir), Gallimard, 1999

 

어린 왕자의 기원은 사람들의 땅마지막 부분인 제8사람들이다. 홀로 해변으로 향하는 야간 기차에 탑승한 생텍쥐페리는 새벽 1시경 열차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텅텅 빈 침대칸과 일등칸과는 달리 외국인으로 꽉 차 있는 삼등칸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프랑스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폴란드 해고 노동자 수백 명이 잠들어 있었다. 경제적인 추세에 떠밀려 유럽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흔들거리며 끌려가고 있는 이방인들이었다.


우연히 어떤 부부 앞에 앉은 생텍쥐페리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끼어 그럭저럭 자리를 만들어 잠자는 어린애 하나를 발견하였다. 빛나는 이마에 삐죽 입술을 내밀고 있는 아이를 보자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떠올랐다. 그는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평화의 아름다운 약속을 발견한다. 그것은 성장하면 깨어져 사라질 동화 속 평화의 어린왕자 모습이었다. 보호해주고, 보살피고, 교육하면 아이들은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왕자는 전쟁의 공포를 무시하는 어른들 속에 잠들어 버린 평화로운 어린 시절의 나의 이미지이다. 예전에 우리 모두는 어린 왕자였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어린왕자가 우리 안에 살고 있었다. 이제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모차르트의 부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생텍쥐페리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 남부에 인질로 남아 있는 그 시대의 어린 왕자유대인 반군국주의 평화주의 시인레옹 베르트(1878~1955)에게 자신의 어린 왕자를 헌정하였다.

 

생텍쥐페리는 평화를 논리로 풀려하지 않는다. 나아가 논리로 설명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의 인생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정치가들이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거창한 말의 진정성과 논리성을 따지려 들지도 않는다. 그들의 말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말이 자신의 요구에 상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이다. 평화를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동료들과의 진정한 연대감이기 때문이다.

 

너는 관계의 매듭이고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너의 관계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너의 관계는 너에 의존하여 존재하지.

사원이 돌 하나하나로 존재하듯.

네가 돌 하나를 빼내면 사원은 붕괴하고 말지.

-생텍쥐페리, 성채(Citadelle) , Gallimard, 1948

 

연대를 이루는 나 자신이 사회 자체이며 하나의 국가라는 것이다. 사회와 국가가 나로 인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역할일지라도 그것을 존중하는 사회는 평화의 선물로서 보편적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평화롭게 살다 평화롭게 죽을 것이다. 평화는 논리적 설득의 산물이 아니라 차라리 논리를 단순명료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이데올로기의 효율성이 증명된다 해도 이데올로기들끼리는 여전히 서로 대립할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바오밥나무의 자양분인 위선과의 싸움 아닐까.


생텍쥐페리, 성채(Citadelle)Gallimard, 1948


조세희, 시간여행문학과 지성사, 1983

 

한국 전쟁으로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은 작가 조세희의 작품 가운데 어린 왕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 세 편이나 된다. 시간 여행(문학과지성사, 1983)에 실린 사막에서, 나무 한 그루 서 있거라, 어린 왕자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어린 왕자에서 주인공인 작가는 이치에 안 닿는 일이라고 말하며 어린 왕자에게 감옥에 갇힌 자기 친구를 만나 위로해줄 것을 부탁하며 바오밥나무의 위험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비행사의 책은 이 세상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바오밥나무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오밥나무는 일종의 약속 언어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만 번 말해도 많은 것이 아니다.

 

평화는 바오밥나무들의 제거를 전제로 한다. 평화의 길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바오밥나무, 평화를 위장한 바오밥나무들이 진정한 연대감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무지와 탐욕의 바오밥나무 씨가 이룬 평화 협정을 지킬 필요도 없다. 270여 개 이상의 언어로 읽히는 어린 왕자는 종교와 민족, 계층과 세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의 바오밥나무들과 싸우는 평화지킴이들의 연결 고리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반전주의 문학으로서의 실천적 평화 메시지가 이 땅의 평화 운동을 위한 하나의 디딤돌로 작용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땅의 바오밥나무는 아닌지 자문하며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송태효 불문학 박사로 현재 '어린왕자인문학당' 대표와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 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 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생텍쥐베리 사람들의 땅, 어린 왕자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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