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오로지 민주와 평화의 연대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정영철(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멀고도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적대적 두 국가’론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한편,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출범으로 벌써부터 북미관계의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고, 국가 간 이해관계 앞에서 복잡함이 더해지고 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다. 지난해 말 열렸던 전원회의, 그리고 올해 1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경제건설을 중심에 두고 올해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어지는 미사일 시험 발사 후 김정은 위원장은 핵시설을 둘러보면서 압도적인 ‘핵전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당분간 남북관계 개선과 회복은 어려울 것이고, 기나긴 노력 없이는 되돌아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과거 2018-19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등 위로부터의 전격적인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갔던 당시,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북미간 적대관계가 끝나고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감했다. 그러나 결과는 2019년 하노이에서의 협상 실패와 함께 북미 간에는 더 이상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남북은 개성 연락사무소 건물 폭파와 ‘두 국가’ 선언에 이은 철도-도로 폐쇄, 군사분계선 상의 콘크리트 장벽 설치 등으로 완전한 단절이 이루어졌다. 급기야, 이번 비상계엄에서 보듯이, 북한을 자극하고 도발하여 내부의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위험천만한 일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소위 말하는 평양 무인기 사건, 연평도에서의 심각한 포 사격 훈련, 오물 풍선에 대한 원점 타격 등이 그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실행이 시도되었다.
트럼프의 등장과 높아지는 우리 사회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라는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개선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남과 북이 변화하였고, 남북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변화했으며, 무엇보다도 ‘통일’이나 ‘민족’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과 시선이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역사를 회상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역사에 머물러 있기만 해서는 앞으로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변화하는 현실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느리지만 확고하게 앞으로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래서 호시우보(虎視牛步)*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 범처럼 노려보고 소처럼 걷는다는 뜻으로, 예리한 통찰력으로 꿰뚫어 보며 성실하고 신중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
이번의 비상계엄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놀라운 연대와 창의력이 그 실마리가 될 것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응원봉 시위에 이어, 남태령에서 보여준 연대의 순발력, 눈 내리는 길에서 우주최강의 진면모를 보여준 키세스 시위까지.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단지 지구력과 인내심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연대의 힘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놀라운 지지와 응원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오랜 민주주의 투쟁과 저항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힘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연대로 승화한다면 지금의 어려움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결국 남과 북의 연대라 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와 평화의 연대만이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사회에는 소위 반북, 종북, 혐북 그리고 오늘날에는 혐중의 극우적 가치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리가 광장에서 목격했듯이, 이 모두를 이겨내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그래왔듯이, 이러한 민주주의의 가치와 평화의 가치가 연대하는 것만이 분단된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와 평화를 맞이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3대 전투를 재현한 <명량>이라는 영화 속에서 모두가 일본 해군의 압도적 무력 앞에 주저하고, 좌절하고, 때로는 줄행랑을 칠 때, 이순신 장군이 했던 한마디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놓을 수만 있다면…” 영화에서도 그려졌듯이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는 순간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결과는 일본 해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지금의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보자. 지난해부터 보여준 놀라운 민주주의의 힘이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분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존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시기, 남북의 화해도 결국 민주주의 힘으로 견인하지 않았던가.
지금 당장은 남북관계에 별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고, 트럼프가 협상에 적극적이어도 한반도를 둘러싼 구조의 변화가 없다면,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트럼프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의 문제를 풀어갈 주체는 남북한이며, 남북한을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공고히 자리 잡은 민주주의의 힘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와 공존의 가치가 확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가장 확실한 방도일 것이다.
오로지 민주주의와 평화의 연대만이 한반도 문제를 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평화의 연대는 지금까지 남북관계에서 우리 정부가 보여주었던 미국에의 종속과 자율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반도 문제의 당당한 주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모든 사람들을 충격과 분노, 공포와 불안으로 밀어 넣었던 비상계엄 조치가 국민들의 힘에 의해 제지당하고, 이제는 그 주범과 공범들에 대한 법적, 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전히 답답하고 혼란스럽지만, 역사는 언제나 민주주의적 연대가 승리로 귀결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는 이를 넘어 민주주의와 평화의 연대를 통해 지금의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할 때이다.
2025년 1월 11일 진행된 '평화를 시민의 것으로, 시민평화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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