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7.10.30 14:38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어린왕자가 전하는 길들임의 구도 여행기

 

송태효


▲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와 만난 어린 왕자.

스탠리 도넌의 「어린왕자(The Little Prince)」 (1974)


『어린 왕자』는 어린이와 어른 두 사람의 예기치 않은 만남과 이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행기이다. 이 이야기는 이중의 여행 구조를 지닌다. 길들임과 책임이라는 인간관계의 진실을 찾아낸 어린 왕자의 구도 여행이 그 하나요, 또 하나는 자신 속에서 잠들어버린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찾아가는 비행사의 추억 여행이다. 


비행사의 잊힌 분신이기도 한 어린 왕자는 사랑의 멘토 여우와의 낯선 만남을 통해 길들임이라는 보석 같은 지혜를 깨닫고 소행성 B612로 돌아간다. 화자인 비행사는 하늘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륙하였으나 사막에 불시착하여 어린 왕자를 만나 그의 여행담을 들으며 그 기원과 신비를 풀고 일상으로 귀환하게 된다.



사실 어린 왕자는 누구나 그러하듯 순수하기만 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을 사랑하기에 까탈스럽게 구는 장미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새로운 친구를 찾아 이웃 별을 유람한다. 우스꽝스러운 왕, 허영장이, 술 아저씨, 사업가, 지리학자를 만나 실망하나 다행히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로등지기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과 정직한 대화를 나눌 수 없어 “어른들은 정말 희한해”라는 말을 반복하며 헤어지고 만다.



지리학자의 추천으로 방문한 지구 사막에 떨어져 처음 만난 것은 징그럽고 다리도 없는 흉측한 뱀이었다. 하지만 뱀은 곧 어린 왕자의 순수함을 알아보고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며 다시 찾아오라고 충고한다. 사막의 꽃은 어린 왕자에게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 제자리를 맴돌며 고통스러워한다고 일러주기도 한다. 모래와 바위와 눈길을 헤치고 마주한 정원에는 무려 오천 송이의 장미가 만발해 있었다. 이 세상에 단 한 송이뿐인 꽃을 갖고 있어 자부심이 대단했던 어린 왕자는 그만 자신이 남겨두고 온 장미 한 송이와 세 개의 화산으로는 위대한 왕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풀밭에 누워 눈물을 흘리고 만다.



▲ 오천송이 장미꽃을 보고 풀밭에 엎드려 우는 초라한 어린 왕자



길들임과 우정



거창하고 심오한 것을 찾아내어 위대한 왕자(grand prince)가 되고자 했던 어린 왕자(little prince)가 여우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관계 맺음으로 하나의 사건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장미에 바친 시간 때문에 그 장미가 그토록 소중하고, 한 송이 장미나 물 한 모금에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구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친구도 사귀고 싶고 알아볼 것도 많다며 떠나가려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위대한 진실을 알려준다. 자신을 길들여야만 친구가 될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길들인 것뿐이라고. 



여우: “제발…날 길들여 줘!”


어린 왕자: “그래,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 찾아볼 친구도 많고 알아볼 것도 많아.”


여우: “길들이는 것들만 알 수 있다니까. 사람들은 이제 뭘 알려고 시간을 들이지 않아. 가게에서 완제품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 이제 친구도 없는 거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여!” 


어린 왕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여우 : “정말 참을 줄 알아야 해.”



▲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해질거야"




원래 ‘길들이다’는 ‘어떤 일에 익숙해지다.’ 혹은 ‘행동하는 방법이나 생활 습관을 지도하여 올바르게 나가도록 하다.’라는 뜻을 의미하는데, 이 말은 예전부터 우리도 일상적으로 사용해 온 말이다. 세조의 불경 언해본에 “부처는 길들이는 사람이오.”, “그 마음을 질드려 큰 지혜를 가르치시니” 등 그 용례가 자주 나온다.



이렇듯 ‘길들이다’라는 말은―오늘날 순응적인 인간의 태도를 의미하는 야유의 이미지도 지니게 되었지만―원래 우리말에서는 자연 상태의 이기적인 인간의 마음을 순화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지도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어 ‘길들이다 apprivoiser’(to tame)는 어원적으로는 친해짐(familiariser)을 말하며 동물을 ‘길들이다’ 혹은 ‘서로 친구가 되다’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생텍쥐페리 역시 길들임을 마음속 순수한 심성을 찾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사용하여 우리의 ‘질드리다’와 유사하게 사용하고 있다.  



『어린 왕자』의 화두로 우뚝 선 길들임이란 사실 관계 맺음으로서의 우정의 또 다른 표현이다. 어린 왕자는 여우가 깨우쳐준 사랑과 우정이라는 길들임의 의미를 깨닫고 비로소 순수한 아이가 되어 과거의 몸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났던 것이다. 이기적이고 호기심 많은 아이가 자신을 기다리는 장미를 찾아 B612로 떠나는 순수한 아이로 돌아간 것이다. 



▲ 300번째 언어인 아랍어 방언 하사냐어(Hassanya)로 번역된 『어린 왕자』





길들임, 진정한 평화의 길



『어린 왕자』는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서 3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2억 부 이상 출간된 세계 시민의 교과서이다. 그뿐 아니라 만화와 소설, 아동문학, TV, 영화, 애니메이션, 연극, 오페라, 뮤지컬, 이미지 패러디, 마리오네트, 샹송, 창작 연주, 퍼포먼스, 패션, 광고, 인문 치유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어린 왕자』의 길들임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프랑스 알자스의 어린 왕자 공원, 브라질 파라나의 ‘페투에노 프린시페’(어린 왕자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병원, 일본 하코네의 ‘어린 왕자 박물관’, 경기도 가평의 ‘쁘띠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서 어린 왕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 어떤 문화 콘텐츠가 이토록 세계의 시민들을 하나의 마음으로 함께하게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국경 없는 공연 예술 문화의 공간을 창조해냄으로써 어린아이와 어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전하는 『어린 왕자』. 국가 간 평화를 의례적인 조약과 제도 확립으로 담보할 수 없듯이 제도와 공공질서 확립만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할 수 없다. 평화의 뿌리는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고,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길들임에 있다. 어린 왕자가 뱀과 여우 그리고 비행사와 길들여저 친구가 되듯이 말이다. 어린 왕자의 길들임은 우정과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관계 맺음이며, 관계 맺음은 책임 질 줄 아는 것이며, 책임지는 것은 진정 인내를 조건으로 한다. 숫자와 타이틀 경쟁에 멍든 어른들이여 인내심을 갖고 어린 시절의 나에 길들어보자.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평화주의자 레옹 베르트의 어린 시절에 헌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에만 길들어가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할 뿐이다.





송태효 ㅣ 불문학 박사로 현재 '어린왕자인문학당대표와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등이 있고역서로는 생텍쥐베리 사람들의 땅어린 왕자』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