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7.10.30 14:48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나폴레옹 전쟁이 남긴 유산

 


김소울



프랑스의 군인이자 제 1통령, 황제를 역임했던 나폴레옹1세(Napoleon I)는 군지도자라는 명성 때문에 히틀러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12년의 권력행사 후 산더미 같은 해골을 만들어 냈다면, 나폴레옹은 교육, 종교, 문화, 법률 등 프랑스에 남긴 행정체제와 시민개혁만으로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프랑스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소년 나폴레옹은 16세의 나이에 사관학교를 졸업해 장교가 되고, 1793년 툴롱에서 천재적인 전략으로 영국군을 몰아냄으로써 무기력한 프랑스 혁명군의 영웅으로 급부상한다. 1795년에는 프랑스 국민공회에 반대하는 반란을 진압함으로써 정치권력에도 가까워 졌고, 그 즈음하여 음악가 베토벤은 “나폴레옹은 오합지졸 군대를 단 며칠만에 최정예 부대로 변화시키는 탁월한 지도력이 있다”고 극찬한 바 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쿠데타를 장악할 때마다 “공화국이 자유로워지는 순간 권력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왕권을 몰아낸 나폴레옹이 선택한 것은 황제가 되는 일이었다. 1804년 12월 황제 대관식이 거행되었고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가 탄생한다.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은 신고전주의 작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d)에 의해 그려졌으며, 정치적 선전목적으로 좋은 효과를 본 나폴레옹은 이후 다비드에게 유사한 그림들을 몇 장 더 주문하게 된다.





▲ 쟈크 루이 다비드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1800)




황제 즉위 후 본격적 정복전쟁을 시작한 나폴레옹은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하게 되지만, 영국과의 1805년 트라팔가 전투에서 패배하게 된다. 터너(William Turner)가 그린 <트라팔가 전투>는 조지 4세가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은 트라팔가 해전을 다룬 작품으로 그림 속에는 영국 해군함 HMS빅토리가 보이고 있다.  





▲ 윌리엄 터너 <트라팔가 전투> (1824)


 


빅토리호가 1805년 포츠머스를 떠나 트라팔가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함대와 마주하자, 지휘관 넬슨은 신호를 보내게 된다. “영국은 모든 이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바란다.” 전투는 몇 시간 후 승리하였지만, 지휘관 넬슨은 전투 중 적의 총에 맞게 되고, 잠시 후 승전 소식을 들은 후 배 위에서 사망하게 된다. 영국은 트라팔가 해전을 나폴레옹 전쟁시대 해전의 결정판으로 보고 있다.



나폴레옹은 패전 이후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대륙 봉쇄령을 내려 영국을 견제하려 하였으나,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영국은 자신의 식민지와 라틴아메리카를 통해서 대륙에 들어가지 못한 손실들을 보충하였고, 오히려 해상봉쇄령을 통해 유럽 전역을 압박하게 된다. 이로써 영국보다 유럽대륙이 더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되고, 나폴레옹의 전략은 실패하게 된다. 이후 대륙봉쇄령을 무시한 러시아에 원정을 계획하였지만 몰락하고 만다.



나폴레옹은 몰락했지만 그가 유럽에 남긴 영향력은 엄청났다.



나폴레옹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프랑스 혁명 이념을 전 유럽에 전파했다. 민족주의는 민족 독립과 통일을 주요 가치로 가지는 사상이며, 자유주의는 프랑스혁명의 이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자유와 평등을 이루고 권리를 확대하려고 한 사상이다. 이는 유럽 각국에서 봉건제와 신분제가 폐지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아이캣 미술치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