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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6_1 김정수_4.27 판문점선언 3주년을 맞는 시민사회의 고민과 실천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5. 17.

[한반도 이슈] 

4.27 판문점선언 3주년을 맞는 시민사회의 고민과 실천

김정수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위의 제목으로 글을 써 달라고 해서 ‘글쎄, 뭔가 쓸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수락을 해버렸다. 그러다 막상 글을 쓰려니, 지난 3년 우리는 뭘 한 거지? 정말 열심히 일 했는데, 지금 우리 손에 남은 것은 뭐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참 허탈하기만 했다.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정권에 대한 기대는 남북관계에 대한 희망으로!
2017년 5월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나니, 내 마음에 ‘아, 이제는 남북관계가 좀 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올라왔다.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날로 심각해 지는 북한의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로 북한과 미국의 말 폭탄 수위도 높아 졌다. 이러다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을 잠재운 것은 대통령의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군사훈련이나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자는 일종의 적극적 휴전 제안이었다. 이후 남북공동입장 등 북한을 초청하고 북이 이에 대응하여 김여정 부부장과 북측 대표단이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남북 사이의 긴장은 눈 녹듯 사라지고, 이후 4.27 판문점선언까지 남북관계는 일사천리로 잘 풀렸다. 

판문점선언 직후부터 시민사회에는 실망이 쌓이기 시작했다
온 국민이 환호하는 가운데 판문점선언이 발표되고, 그동안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했던 남북 민간교류 단체나 대북 인도적 지원 단체들은 감격한 만큼 활발한 활동이 재개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한 감동과 감격, 환희와 기대는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어? 이거 왜 이렇게 되지? 정부가 왜 시민단체들에게 조금 기다리라고 하지?’ 등의 물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편, 그동안 억눌린 교류와 협력에 대한 욕구가 폭발되어 과잉욕구를 관리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라 이해가 되었다. 일단 정부가 나서서 살얼음 같은 관계를 풀어내려고 하니 시민사회는 좀 참아 달라고 했지만, 그런 부탁 속의 배제는 점점 길어졌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당황스러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남북의 사회문화교류나 인도적 지원, 그리고 정부가 야심차게 추친하려던 철도·도로 연결, 한반도 경제 공동체 구상 등등 모든 것을 막았다. 한미워킹 그룹은 한국이 한 발짝이라도 먼저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은 인도적 지원 물품인 타미플루를 수송할 교통수단이 제재 조항에 묶여 북측에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 어떤 이들은 제재로 인해 트럭이 안되면 배낭을 메고라도 북측에 가서 전달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마찬가지로, 2019년 2월 남북해외 새해맞이 공동행사에 취재 기자들은 노트북도 북측에 가져갈 수 없었고, 농민들이 정성을 다해 준비한 농업용 트랙터도 전달하지 못했다. 

남쪽의 우리들도 실망스러운데 북측은 얼마나 더했을까. 그래서인지 2018년 11월 남북 민화협 연대모임에서 오랜만에 상봉한 북측 인사들로부터 남측 인사들이 제대로된 상봉인사도 나누기 전에 “남북합의를 철저하게 이행해야 한다”는 요구를 강하게 들었고, 민간교류 경험이 별로 없었던 어떤 분은 그런 북측의 태도에 너무 당황했다고 한다. 필자도 2019년 2월 금강산에서 열린 새해맞이 연대모임에 참석해서 북측 여성들을 만났는데, 역시 “남북수뇌분들의 합의를 철저하게 이행해야 한다.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북측 여성들의 계속된 주장을 들었다.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분야 합의는? 
코로나 상황 속에 제안된 인간안보 구상,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국방비를 지출 하나?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합의서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자 하는 일종의 신뢰구축을 위한 군비통제 로드맵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군사분계선에서 합의를 이행하는 조처들이 취해졌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긴장을 더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대표적인 것이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무기도입을 비롯한 국방비 증액이 지속된 점이다. 한국의 국방비는 통일부와 외교부의 전체 예산을 합친 것 보다 약 10배 정도 더 많다. 매년 발표되는 국가예산안을 보면, 그 대비가 확연하다. 국방비에는 무기도입비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남북은 판문점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러려면, 남한 내부적으로도 군축을 준비해야 하는데 현실은 군비 확대였고, 문재인 정부의 국방비는 지속적으로 증액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신뢰를 구축하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게다가 2020년 초에는 코로나19 감염병이 터졌고, 대통령은 인간안보를 내세우며 남북 보건협력을 제안했다. 인간안보는 군사안보를 보완하기 보다는 군사안보 중심 담론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대안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현실주의 정치인이나 국제정치학자들은 인간안보가 군사안보를 대체할 수 없고 ‘통합적 안보’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안했다. 

어찌되었든 코로나19가 몰고 온 가장 큰 충격은 경제적 충격인데, 그 많은 지원금, 보조금을 어떻게 한정된 재원에서 충당할 것인가? 그러려면, 국방비를 동결하든지 아니면 증액 수준을 줄여야 하는데,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2021년 3월 그동안 밀고 당기며 진행되던 미군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마무리되었는데, 2025년까지 국방비 증가에 따라 방위비 분담금도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서 시민사회는 애들 말 그대로 빡치는 느낌이었다. 

남북관계 제도화는 멀어지고 “동맹”은 도그마처럼 굳어지고... 
판문점선언 3년이 남겨준 것이 있다면, 한미관계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더 아주 깊게, 한국 입장에서 보면 헤어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끌려들어가는 현실을 확인한 것, 그것이다.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 100일 동안 이전 정부에 비해 훨씬 더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한반도 평화의 봄이 다시 오기 힘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우려가 들 정도다. 통일부 장관은 남북관계를 제도화하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동맹이 더 견고하게 아니 신념의 수준에서 도그마화 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미국은 늘 “동맹의 목소리를 듣고, 동맹과 협의하고, 동맹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이 말하는 “동맹”은 남한 정부에게 양자 택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 전문가들, “한국은 중립국 아닌 동맹... 미북대화 압박 말아야” (VOA, 2021년 4월 30일)

<미국의 소리>에 의하면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 “한국이 중립국처럼 처신하며 동맹인 미국을 과도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으며, 한국 중재자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을 파괴하려는데 전념하는(북한)정권과 한국을 방어하려는데 전념하는 동맹(미국) 사이에서 한국이 중개인을 자처하는 것은 불가능한 접근법”이라 비판한다고 한다. 한국은 “동맹”인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이 “동맹”의 목소리를 듣고 협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동맹”의 결정을 수용하라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면 한국전쟁을 끝내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종국에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는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북한에 대해 “제재”와 “외교”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이 “동맹”의 입장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동맹”의 이름으로 남북관계의 특수성, 한반도 주민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도그마화된 동맹”이나 마찬가지다. 

분단 관리가 아니라 분단 해체로,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적극적 평화 만들기로
4.27 판문점선언 3년의 경험은 우리가 원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분단 관리를 넘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새로운 평화”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두 정상의 선언이 말의 향연으로 산화되지 않게 철저하게 이행하고 또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시민사회는 한-미-일 3각 동맹이 아시아, 나아가 인도-태평양에서 전개되는 신냉전의 흐름이 한반도는 물론 이 지역에 결코 지속가능한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을 잘 안다. 하여 국경을 넘어서는 한-미-일 평화연대, 혹은 한-중-일 평화연대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도그마처럼 굳어지고 나아가 고착된 질서로서 신냉전 질서를 넘어서기 위한 동아시아 평화연대를 구축하지 않으면, 앞으로 판문점선언은 잔인한 4월을 상징하는 여러 비극적 사건들의 하나로 리스트에 올라갈 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움직여야 한다. 

김정수 |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전쟁과 분단의 적대감 극복을 위한 화해를 소망하며 평화운동에 참여해 왔고, 최근에는 국내 여성(단체)들의 평화역량을 키우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인 오래된 여성평화운동가이다.

 

4.27판문점선언 3년을 맞아 평화캠페인을 진행 중인 어린이어깨동무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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