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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6_2 김병연_한반도 평화교육의 사다리는 어떤 모양일까?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5. 14.

[한반도 평화교육] 

한반도 평화교육의 사다리는 어떤 모양일까?

김병연


고백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주제로 글을 쓸 때는 늘 독자들이 이 글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필자 개인의 입장을 미리 밝힌다. 나는 통일이 삶을 보다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오랜 역사를 살펴도 그러하고, 오랫동안 나뉘어 한스럽게 삶을 살고 끝내 마감하고 있는 이산가족 어르신들을 봐도 그러하다. 고국의 분단을 슬퍼하며 통일을 애타게 기원하는 연변과 오사카에서 만났던 동포를 떠올려도 그러하다. 분단비용, 통일비용 등 경제적 가치를 따져도 분단보다 통일이 더 낫다. 그런데 교육자로서 나의 신념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 나의 대답은 ‘아니오!’다. 지향점으로 바람직하다 여겨지더라도 그것만이 정답일 수 없고 그것만이 정답이라 하더라도 교육적 접근으로 적절한가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

애들은 아무것도 몰라! 
3년 전 일이다. 판문점에서 4월에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이어 싱가포르에선 6월에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는 일이 벌어졌다. 그즈음 오랫동안 한반도 평화교육, 통일교육을 함께 고민해왔던 동료 선생님들이 모였다. 꽉 막혔던 남북관계의 개선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 부응하여 교육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심 이야기였다. 이 자리에서 교육적 접근 방법에 대해 나와 한 선배 교사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그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교육에서 학생들의 무지를 무척 안타까워했다. “애들은 정말 아무것도 몰라. 하나하나 다 가르쳐줘야 해. 분단의 원인, 과정, 결과에 이르기까지 다 가르쳐줘야 한다니까.” 그는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였다. 대학입시를 의식한 형식적 행사가 아니라 관심 있는 학생들과 의미 있는 독서활동을 꾸준히 진행해온 프로그램 기획자였다. 학생들 앞에 떳떳하게 지식을 가르쳐주기 위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잘 몰랐던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설득하는 것이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교육의 첫 출발이라 믿었다. 그의 주장이 일면 타당하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그날 조곤조곤 딴지를 걸었다. 

세상을 닮은 아이들! 
교사가 자신 있게 분단, 통일, 남북관계를 가르치려 할 때 학생들은 침묵 모드로 변한다. 이때 침묵하는 아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그러할까?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지금껏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만나본 학생들은 모두 분단과 통일, 북한 등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놀라울 만큼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 즉 자신의 부모님 세대와 닮은 관점이 담긴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학생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때론 교사의 이야기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거나 다른 수업과 달리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교사로서 경험이 쌓일수록, 학생이 성장할수록 이러한 경향성은 더 커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 
학생들은 학교에서 교과 지식을 비롯하여 기본 생활 태도, 사회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역량 등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공식적이고 표면화된 지식은 교과수업을 통해 다뤄진다. 다양한 교과를 통해 배우게 되는 지식은 모두 같은 성격이라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자명한 것으로 밝혀진 수학 공식을 다루는 것과 한반도의 분단과 평화 문제를 다루는 것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수학적인 개념, 과학 이론, 역사적 사실 등은 비교적 객관적이어서 답이 분명한 경우가 많다. 잘 이해하는 학생과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있지만 소위 정답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반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 사회에서 살아갈 것인지 등은 한 가지 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가 복잡한 만큼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수업은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고유한 세계관과 인간관을 형성해 가고 있는 학생들이기에 다양한 수준과 유형의 답이 나올 수 있고 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분단과 평화, 그리고 우리 아이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한반도의 분단과 평화를 수업에서 다루는 일은 후자에 가깝다. 분단을 폭력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화롭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통일을 지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수십 가지의 답이 가능하다. 남한을 중심으로 북한을 통합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과 북이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통합해나가는 것을 이상적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우리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통일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로 7.4 남북공동성명이 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남과 북의 정부 당국자가 처음으로 합의한 통일의 기본 원칙은 이후 남북 기본 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공동선언,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 선언 등의 기본정신으로 이해되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인식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학생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다수의 통일의식 조사 결과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학생들의 생각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학생들은 남한과 북한이 자발적으로 통일을 합의하고 만들어가는 것을 자주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기뻐할까? 다수의 학생들이 지금의 분단현실을 평화롭게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통일 논의가 전개되는 것을 평화롭게 여기게 될까? 북한 사람을 다른 나라 사람보다 못하게 여기고 있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민족임을 내세우는 세우는 것에 학생들이 얼마나 동의하게 될까? 2018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가운데 북한 선수단과 단일팀을 이루는 과정에서 소위 다수의 기성세대가 느낀 당혹감은 과거와 다른 정서와 판단이 학생들을 포함한 젊은 세대에 공유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회적 합의는 가능한가?
통일 관련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 중 하나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적인 통일의 모습과 그 과정을 합의할 수 있을까?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남북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가 가능할까? 세대 간 인식차는 날로 커지고 있고 더불어 세대 내에서도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을 합의해야 할 것인가? 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육의 장면에서 합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생각의 사다리를 고민해야!
전통적으로 한국의 통일교육은 통일을 당위적 과제로 설정하고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치중해 왔다. 그 가운데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학습 목표와 학생들의 인식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 교사 집단에서도 세대 간, 세대 내 구성원 간에 분단, 평화, 북한, 통일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는 사회와 닮아있다. 통일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이지만 미래의 가능성으로서 통일에 의문을 제기하며 북한과의 교류 추진이 반갑지만은 않은 교사들도 있다.

구소련의 인지심리학자인 비고츠키(Vygotsky)는 학습자가 제시된 과제를 잘 수행하도록 돕기 위해 비계[Scaffolding, 飛階] 설정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학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도록 교사는 학생의 인식수준을 고려하여 일종의 사다리를 놓아줄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학교 안과 밖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옳고 그름을 떠나 현상에 대한 인식은 다양할 수 있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너무 큰 사다리가 아니라 적절한 생각의 사다리를 고민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교육이라는 사다리
우리 모두 함께 동의할 수 있는 한반도의 미래는 무엇일까? 모로 가도 통일만 되면 되는가? 가르치는 이, 배우는 이, 모두 마음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수업 목표는 무엇일까? 통일을 바라는 사람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한반도에서 살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부인하기 어렵다. 통일 자체가 아니라 모두의 평화로운 삶은 한반도 이슈를 다루는 교육에서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평화교육은 학생들이 전인적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로 교육 그 자체와 목표를 공유한다. 평화교육은 학생들이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을 존중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교육이다. 다른 사람도 소중한 인격체임을 알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 사회생활에서 맺게 되는 다양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 숙고하고 성찰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한반도 평화교육은 나와 우리 모두의 평화가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남북관계를 우열의 관점이 아니라 대등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남북관계에서 벌어졌고, 벌어질 수 있는 많은 사건을 다양한 맥락에서 탐구하여 내재 된 갈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탐구하도록 하는 교육이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분단이 초래한 모순을 배울 수 있고 분단을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는 것의 필요성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 가운데 통일은 설득력 있는 가능성의 하나로 다뤄질 수 있다. 학생 스스로 한반도 문제를 자기 삶의 문제로 인식하고 무지함을 깨달아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한반도 평화교육은 본래의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김병연 | 한국전쟁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던 곳 중 하나인 거창에서 나고 자랐다. 군 생활에서 해야만 했던 반공안보교육과 교사가 된 후 하게 된 통일교육의 모순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계속 고민하게 만든 힘이 되었다. 현재 양재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학생들에게 삶의 문제로서 다가갈 수 있는 배움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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