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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7_6 정지영_우리는 갈 수 있어요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8. 13.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2] 

우리는 갈 수 있어요

정지영

 

폭염으로 난리가 났던 2018년 7월, 충남교육청에서 실시한 평화통일기행에 참가했을 때 일이다. 압록강 단교 끝자락에서 북한과 중국을 넘나드는 차들을 보면서 북녘 땅에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 후에, 호텔 로비에서 듣게 된 ‘우리는 갈 수 없어요.’란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여름휴가를 북한으로 가는 조선족 할머니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단장님이 여러 번 되풀이 한 것이다. 북한 여행이 할머니께는 당연히 가능한 일이고,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단장님이 애처로워 보였다. 전날 조중친선다리를 건너는 ‘고려여행사’ 버스를 봤던 터라, 그들의 대화가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고성의 통일전망대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단둥에서의 기억이 이 글을 쓰게 하는 것 같다.

 


그즈음에 나는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 박종호 선생님의 안내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남북 분단에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열린 창비담론 아카데미’를 통해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분단 체제’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해결하는 실천에 동참해야 한다는 담론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평화교육 교사모임에서 ‘학교 안에서 평화와 통일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도 고민하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던 학교 안에서의 평화통일교육에 눈을 크게 뜰 수 있었고, 작은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2019년 12월,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린 평화통일교사워크숍이 있었는데, 평화교육 교사모임에서 공유하고 있는 것을 워크숍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다. 평화와 통일을 우리 생활 속에서부터 시작하기 위한 통일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여러 선생님과 나눌 수 있었고, 우리 모임의 가치도 느낄 수 있었다. 학교의 당면 문제에만 매달렸던 내가 평화와 통일, 그리고 교육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학교에서 실천해야겠다는 뜻을 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통일교육원에서 주관하는 ‘평화통일 연구중심 학교 모집’ 공문을 보고 평소 품은 뜻을 행동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 전에는 문학 작품(월북작가이며 천안출신 소설가인 이기영의 ‘고향’)을 통해 학생들이 남북 분단을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선에서 머물렀었는데, 이제는 직접적인 평화통일교육을 추진하기 위해 공모 신청서를 작성했다. 공모 신청 시기가 학년 말이라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한 채, 학교 메신저로 선생님들께 공모 동의를 구했더니 많은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발품을 팔면서 협조를 구할 때, 한 선생님의 ‘통일은 해서 뭐 해요?’라는 말을 듣고 낙담도 했다. 하지만 평화교육 교사모임에서 격려와 위로를 받으면서 재충전하고서, ‘지역사회 맞춤형 통일교육 모델 연구’라는 거창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시작한 공모였기에 선정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선정이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충청남도 소속 고등학교에서는 우리 학교만 신청했기에 자동으로 도교육청의 추천을 받은 것이었다. 한 편으로는 평화통일이 학교 교육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 같아 씁쓸했다.

어수선한 학기 초에 평화통일교육 활동에 시동을 걸었지만,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2/3 등교 준수 때문에 진도를 맞추느라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평화통일을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수업과 연결된 활동을 해야 만이 학생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2학년 문학 수업을 재구성해 보았다. 창비 문학 교과서에 부록처럼 수록된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수업 전면에 내세우고, 이성부 시인의 ‘봄’을 연결시켜 평화통일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려고 했다. 그 뒤에 특강으로 신동엽 학회장이신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님을 섭외했다. 충남 부여에 있는 신동엽 문학관을 염두에 두고 문학 수업 내용을 심화하고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 홍보를 했지만, 학생들의 참여는 많지 않았다. 신동엽 시인 생일에 문학 답사를 진행하려던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고, 퐁당퐁당 등교로 인해 제대로 된 홍보를 하지 못한 탓이다. 여러 문제로 신동엽 문학관 답사까지는 실시하지 못했지만, 교수님께서 온라인에서 들려주신 신동엽 시인에 대한 재미있는 말씀에 위안을 받았다. 내년에는 학생들과 신동엽 시비가 있는 백마강변을 꼭 걸어볼 것이다.

그리고 평화통일교육을 학교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 기존 프로그램과 연계를 모색했다. 평화교육 교사모임에서 배운 ‘나와 우리, 남북, 그리고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가 연결된다는 전제로 ‘세계시민교육’을 ‘세계시민평화교육’으로 확장했다. 강연을 통해 어린이어깨동무 이기범 이사장님께서 평화통일의 씨앗을 뿌려 주셨고, 이성숙 평화교육센터 팀장님께서 싹을 틔워주셨다. 그 연장선에서 학생들이 평화와 통일을 스스로 탐구해 볼 수 있도록 STEAM 융합 수업도 준비하고 있다. 8월 개학을 한 후에 ‘평화통일 관련 주제’로 ‘분단과 기회비용’, ‘북한의 지하자원과 통계’, ‘DMZ와 독일의 그뤼네스반트(생태계)’라는 주제의 융합 수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나는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진행했던 ‘적군묘지’ 탐방과 최근 창비교육에서 나온 ‘대한민국 평화기행(2021)’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있다.

 


한 학생이 신청 기한을 넘겨 꼭 참가하고 싶다고 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다. 학생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재미있을 것 같아요. 지구과학 수업이 제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북한의 지하자원을 설명하면서 ‘나는 통일되면 굴착기를 끌고 북한으로 갈 거야.’라는 농담을 들려주셨단다. 북한의 지하자원에 관해 융합 수업을 준비하시면서 교과 수업 자투리 시간에 학생들에게 건넨 말씀이었다. 이렇게 다채로운 평화통일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물꼬를 터놓을 수 있도록 여름을 보내야겠다.

앞으로 2학기에는 다양한 행사(피카소 랜선투어-‘한국에서의 학살’ 피카소 전시회를 코로나 19로 참관하지 못하기에 온라인으로 대체, 모감주나무 심기, 급식실 가는 길목에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수였던 모감주나무 심기, 게더 타운에 융합 수업 공간 만들기– 확장가상세계에 STEAM 융합 수업 결과를 게시하여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맛볼 수 있게 하기, 전태일 관련 연극을 학교에 유치 – 우리 안의 평화를 고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연극과 수업 연계 등)를 마련해 볼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평화와 통일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는 갈 수 없어요.’가 아닌 ‘우리는 갈 수 있어요.’를 우리 모두가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정지영 |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교사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다방면에 대한 관심과 실행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선생님이 되려는 북일고등학교 문학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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