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다시 평화를 향한 신발끈을 조여매고
정영철(서강대학교 교수·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였다. 새 정부의 정책이 아직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후보시절의 발언, 대통령 선거 당시의 공약, 그리고 통일부 장관 내정자 등의 발언을 살펴보면,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당당한 외교, 튼튼한 안보’라는 총적 구호에서 보이듯이, 새 정부의 공약은 지금까지의 평화와 공존을 기반으로 하던 대북-통일정책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기존의 화해와 협력을 대신하여 ‘힘에 의한 평화’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한미동맹 강화, 한미군사훈련의 정상화, CVID 방식의 비핵화, 사드 배치, 쿼드 참여 등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의 강한 편입, 힘을 통한 북의 굴복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일방적 요구 등으로 가득차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경정책을 예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화에는 열려 있다고 하여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아 매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과거 이명박 정권 시절 겪었던 ‘비핵 개방 3000’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선 비핵화’에 따른 대북 강경정책의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여기에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유화정책이 실패’했다는 발언을 더한다면,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쉽지 않겠다는 예상을 하게 된다.
2000년대의 힘겨웠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한반도의 ‘평화’가 위태로워질 위기에 있다.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고, 경험했듯이 힘에 의한 북의 굴복이나 ‘선 비핵화’는 시효가 지난 오래된 낡은 구호이자 정책일 뿐이다. 더욱이 그 귀결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도전이었고, 좌절이었다. 2018년의 판문점과 평양, 싱가포르 등에서의 역사적인 순간순간은 비록 하노이에서의 좌절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지만, 지금의 한반도 평화를 가져온 소중한 결실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과정이 단절되는 동시에 후퇴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
마침 북도 그 동안 자제해왔던, 그리고 2018년 핵과 미사일 시험 모라토리움 선언에 의해 중단해왔던 군사적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2019년의 하노이 이후부터, 미사일 발사 등에 소극적 행보를 보여 주었던 북이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그리고 신 정부의 출범과 함께 ICBM 시험발사와 정찰위성을 명분으로 한 로켓 발사 시험을 이어 나가고 있으며, 그럴 예정이다. 결국 북도 2018년의 모라토리엄과 9.19 군사합의서에 따른 한반도 평화의 구조에 더 이상 얽매어 있지 않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중간 갈등,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중국과 러시아를 한편으로 하고, 미국을 한편으로 하는 전 세계적인 ‘신냉전’의 분위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한반도 역시 그러한 ‘신냉전’ 의 한복판에 서게 될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기억하기조차 싫은 2017년으로의 회귀를 예상케 한다.
우리는 결코 한반도의 평화를 포기할 수 없다. 우리의 역사는 평화를 향한 긴긴 여정 속에서 때로는 좌절하고, 깊은 계곡에 빠져 허우적거렸지만 긴 역사의 길에서 보자면, 더 많은 평화와 더 깊은 평화를 향해서 쉼 없이 걸어왔다.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하다. 우리는 지금 ‘평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평화가 없이는 그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너무도 뻔한 말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평화를 포기할 수 없으며,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오래된 명제를 정면으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명분으로 전쟁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그런 명제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거든, 한발 한발 평화로 다가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에 대해 이전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잠시 좌절하고 흔들릴 수 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불리해지고 있다. 이러한 불리함은 우리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도 존재한다. 또한, 불리해진 만큼, 앞으로의 어깨동무 활동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만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애써왔던 여러 시민단체와 개인들 역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의 미래’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변함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모든 사람과 단체가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연대를 통해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평화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흔히, 전쟁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전쟁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구분한다. 전쟁은 그 누구보다도 여성과 어린이, 노인 등에게 가혹한 불행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길을 포기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과 어깨동무하며 평화의 길을 가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다시금 평화를 향한 신발끈을 조여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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