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교실 이야기1]
어린이들과 체험한 무한경쟁의 잘한당
김지혜
“안녕하세요, 기호 1번 잘한당입니다.”
6학년 선배들이 반에 찾아왔다. 반에서 대통령선거를 하니, 각 후보들의 공약을 듣고 투표를 해 달라고 한다. 4학년 어린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인다. 1번당은 ‘잘한당’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보상을 줘서 더 잘할 수 있게 하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보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게 하여 모두를 잘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1번 후보님, 그런데 열심히 노력했는데 수학이 어려운 건 어떡해요?”
수학 시간마다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의찬이가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질문한다. 생활 속에서 나온 날카롭고 고민스러운 질문일게다.
“그건 노력을 덜 해서 그래요. 열심히 수학 공부를 많이 하면 수학을 잘할 수 있어요. 노력을 많이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지요.”
아이들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이 받는게 당연하지!”
“몇 등까지 장학금을 주나요?”
1번당을 찍으면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아이들 머리 위로 몽글몽글 떠오르는 것 같다.
2번당은 ‘복지당’이다. 공부가 어려운 친구를 위해서 개인 활동 시간에 공부를 가르치고, 키가 작고 시력이 안 좋은 친구들을 앞자리에 배치한다고 한다. 또 몸을 다친 친구가 있으면 청소를 같이 해 준다고 한 다.
3번당은 ‘분배혁명당’이다. 공약은 학교에서 평등화되었으면 하는 점을 건의함에 넣어서 함께 해결방안 찾기, 자리·급식순서·청소를 공평한 방법으로 정하기,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보상을 나누어 주기이다.
“그런데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게 보상을 주면 아무도 잘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에이, 그러면 누가 열심히 해요~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많이 주고, 열심히 안 하는 애들은 보상을 못 받아야 공평한 거지요.”
아이들의 날선 질문이 3번 후보를 공격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1번 잘한당이 당선될 것 같다.
이상한 일이다. 평소 교사의 학급살이 방식은 3번과 비슷하다. 그동안 교실에서 사탕을 받는 경우는 모두를 위해서 봉사를 했거나 선생님의 일을 도와줄 때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교사가 많은 아이들 앞에서 개인적인 성취를 칭찬하며 보상을 주었을 때, 다른 아이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이것이 반복되었을 때의 절망감을 고민한다. 자존감을 확립하고 여러 가능성을 보이는 시기에, ‘나’라는 존재 그대로 존중받고, 다양성을 인정받고, 세상에서 사랑받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줄세우기 경쟁은 끼어들 틈이 없다. 아이들도 차별 없는 결과를 원했다. 학기 초에 줄넘기 시합을 해서 가장 오래 줄넘기를 한 어린이한테 사탕 한 개를 줬다고, “잘하는 애한테만 사탕을 주는 건 불공평하고 차별이다!”며 열을 올렸던 녀석들 아닌가. 한 시간까지만 해도 행사부(반 부서) 어린이들이 보물찾기 퀴즈 행사를 하면서, 퀴즈를 맞힌 어린이나 못 맞힌 어린이나 상처받지 않도록 정답과 상관없이 초콜렛을 모두에게 나누어주지 않았나. 그때는 못 하는 애들까지 다 챙겨야 한다고 했으면서 이제는 퀴즈를 맞힌 사람만 초콜렛을 받아야 한다고 지지하는 꼴이니. 사회와 가정이 모두 잘한 사람만을 인정하는 문화여서 그런 것일까. 자신의 삶과 배치되는 공약을 고르는 아이들의 행위가 아주 흥미로웠다.
오늘 하루는 잘한당의 기조대로!
6학년들이 가고 난 후, 우리반 어린이들과 이야기하여 선거 결과에 따라 그에 맞는 사회로 하루 동안 살아보기로 하였다. 다음날, 결과는 우리반의 분위기대로 ‘잘한당’의 당선이었다. 4, 5, 6학년의 표를 모았는데, 특히 우리반에서 잘한당을 뽑은 표가 많았다고 한다. 오늘 하루는 잘한당의 기조대로 간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평소와 좀 달라도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반의 어린이들이 신자유주의적 경쟁 질서를 선호한다고 하니, 교사는 하루동안 철저히 그 법칙에 따라 학급 운영을 하기로 하였다.
이날은 두 달 만에 반 전체 학생이 등교한 날이었다. 그간 코로나 격리자가 꾸준했던 탓에 반 학생들 모두 출석하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 반 전체가 모이면 밖에 나가서 놀고 사진도 찍기로 했었다.
“선생님! 오늘 우리반 전체 등교했는데, 그러면 한 시간 논다고 하지 않았어요?”
“좋아요. 그럼 오늘은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보상도 주는 날이니까, 수학 학습지 100점 받거나 틀린거 다 고치면 밖에 가서 놀게 해줄게요.”
“네에?!!”
깜짝 놀라는 어린이들.
“잘한당은!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주고 못 하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게 지원해주는 당이잖아요. 근데 수학을 못하는데 밖에서 놀면 어떡해요^^ 교실에서 공부해야죠.”
“선생님! 불공평합니다!”
“이게 더 공평하다고 생각해서 잘한당을 뽑은 거 아니었나요? 잘한 사람은 보상을 주고, 못한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게 하는 건데요? 노력해서 잘하면 돼죠.”
가희는 벌써부터 고개를 책상에 푹 처박는다.
“노력이요. 노오력!!!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교사가 힘차게 기합을 외치는데 반 어린이들의 표정은 좋지 않다.
“선생님, 잘한당 안하면 안돼요? 저 1번 안 뽑았는데요.” “선생님, 다시 투표하면 안돼요?”
울상인 어린이들에게, 민주사회에서 투표 결과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수의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결과에는 책임을 져야하니, 투표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 다른 사람들 말이나 언론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그런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는 거라고. 국어 문제 풀고, 수학 계산하려고 학교에 다니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서 중요한 진실들을 가려내고, 모든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고 가치로운 판단을 하기 위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라 덧붙였다. 교사의 수려한 말솜씨에 어린이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교실은 조용하다.
“선생님, 이거 친구랑 도와서 같이 하면 안돼요?”
4교시 사회시간, 태블릿으로 경기도의 문화유산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거 친구랑 도와서 같이 하면 안돼요?”
“그러세요. 근데 5등까지 보상이 있습니다. 친구들 도와주면 자기껄 못해요.”
교사는 은근히 어린이들에게 ‘조용히’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할 것을 강조한다. 어린이들은 조금 툴툴대는 듯 싶지만, 교사가 20분을 지정하자 곧 잔뜩 긴장하여 자기 자료를 열심히 정리한다. 학생 중 3분의 1정도만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으려니 했는데, 완성한 사람은 그보다 조금 더 많았다. 그러나 적절한 도움 없이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공간에서, 가진 자원이 이미 풍족한 아이들은 열심히 생활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수업 과정을 따라갈 수 있는 아이들은 그 존재를 소외당한다. 수학도 어렵고, 자료 정리하는 것도 힘들어 표정이 안 좋은 희철이에게 가만히 다가가 “힘들지? 오늘만 참자.”라고 하니 아이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결국 어린이 두 명 더 몰래 화장실 가서 울었다. ‘능률추구 각자도생 경쟁사회’의 잘한당 시스템은 도움이 필요한 약자 어린이에게 너무 잔인한 시스템일테다. 모두가 잘하기만을 바라고, 잘하는 것만 예뻐하고, 못하면 잘해야 한다고 강요하니 말이다. 못하면 노는 시간이라는 기본권을 빼앗으면서 공부하라고 하고, 상황에 맞게 세심하게 도와주기보다는 노력해라, 열심히 하라며 개인의 능력을 탓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학생은 공부하는 기계’라는 말이 보여주듯, 여가시간도 없이,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더 나은 성적만을 위해서 살아가기를 강요받는 아이들 말이다.
이렇게 지낸 게 고작 4시간, 그런데 그동안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보상과 처벌에 익숙해진 탓에 ‘효정이는 글쓰기를 다 못했으니 점심밥을 못 먹는게 공정하다’라는 비인간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다. 능력이 없으면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그리고 그것이 공정하다는 우리 사회의 논리도 이렇게 쌓였을 테다.
또, 어린이들이 많이 날카로워졌다. 평소답지 않게 산만하고 말도 많아졌다. 통제를 위해 평소보다 권력을 많이 가진 선생님께는 공손하나, 서로에게 거칠게 대한다. 곳곳에서 싸우고 울고, 과격하고, 못된 말을 한다. 이제까지 알던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 같다. 평소에 우리반은 아주 평화로운 반이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싸움이 벌어져서 점심시간에 4명을 연구실로 데려가 상담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몇 명 어린이들이 연구실 문을 벌컥 연다. “선생님! 교실에서 또 싸움 났어요!” 체험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두드러진 점은, 공부를 못 해서 차별을 받았던 학생들이 더 폭력적이고, 무례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무시받은 자존감에 상처받은 어린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불행히도 악순환의 반복이 될테다. 이런 아이들의 폭력성은 사회가 심어준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하지 못하면 불행하고, 잘해도 불행하다
작년에 국가교육회의에서 국민 10만 명을 대상으로 현재보다 더 강화되어야 할 교육영역을 설문했을 때, 1순위로 ‘인성교육’(36.3%)이 꼽혔다. 과목 공부보다 요즘 아이들의 인성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하지만 인성을 따로 교육하기보다 인간다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우선순위이지 않을까. 잘한당 체제에 익숙해진 대한민국의 많은 어린이·청소년들은, 자신이 차별받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존재가치를 비교당하고 그들 중 몇몇은 어린 나이에 이미 무기력해지거나 반사회적 성향을 띈다. 이것이 비단 학생·청소년들만의 문제일까.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잘한당이기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의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하다. 어렸을 때부터 ‘생존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삶들이 죽을 때까지 피폐하다. 게다가 경쟁의 결과를 오롯이 개인의 노력 정도로 치부하는 능력주의와 공정 이데올로기는 사회 시스템보다 과거의 ‘나’를 탓하게 만들기 때문에, 갈 곳 없는 자아는 결국 자신보다 약자인 자들을 찾아 혐오하고 배척하는 폭력적인 문화를 형성한다. 이는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성장하고 살아가도록 교육하는 사회 구조와 제도, 철학 때문이다.
하루를 지내고 어린이들에게 잘한당 정치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일까 물었다. 장점은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한다. 단점은 잘하지 못하면 불행하고 잘해도 불행하다고 답한다. 마음이 불안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단다. 고작 4시간의 체험에도 두드러지게 변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교육하고 살아가는 방향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김지혜 | '지혜네 노랑꽃집'(우리반 이름)의 한 구성원 '노랑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신념으로 오늘도 흔들리고 흔들리며 세 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것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더 경계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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