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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0_6 주예지_너도 나래? 나도 나래!

by 어린이어깨동무 2022. 5. 18.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2] 

너도 나래? 나도 나래!

주예지

 

2월 신학기 준비 기간. 각 부서로부터 날아와 차곡차곡 쌓이는 업무 메시지에 눈동자가 바쁘다. 겉으로 보기에 세상 차분하게 앉아 있지만 마음이 붕--붕 분주하다. 급한 일부터 정신없이 처리하는 와중에 희망 동아리를 제출해달라는 메시지에 겨우 멈춰 선다. 


문득 동아리가 학교 생활의 가장 큰 기쁨이라는 말을 떠들고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늘 동아리 시간에 동동거리며 쏘다니는 모습을 보며 고생이 많다고 격려해주시는 선생님들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첫해에는 책쓰기 동아리를 맡으면 어떻겠냐는 창체부장 선생님의 말씀에 혹해서 얼렁뚱땅 책을 만들었고, 다음 해에는 시 창작 동아리 ‘詩끌시끌’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집을 만들고 출판했다. 학생자치회를 맡은 두 해 동안에는 평화, 인권, 환경을 주제로 여러 활동을 기획했다. 비슷한 시기에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에 함께하게 되어 많은 도움을 받는 바람에 ‘평화’라는 단어가 제법 익숙해졌다. 앞으로 학교에 있는 동안 평화와 관련된 동아리를 꾸려나가면 즐겁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멈칫한다. 1년 동안 휴직하고 돌아와 낯선 분위기에 아직 어색해서일까? 대학원 학업과 병행하는 일정에 지레 겁을 먹어서일까? 개학 첫날에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동아리는 일단 뒷순위로 미루고 싶어서일까? 앞으로 무척이나 바쁠 것 같은 날들이 머릿속에 펼쳐지면서 갑자기 동아리에 내어줄 마음이 야박해진다. 다소 편한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필사반이나 채색반을 기웃거려 본다. 동시에 마음의 다른 한 켠에서는 아쉬운 마음이 머리를 들이민다. 동아리가 아니면 평화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실천하지? 지금 이어나가지 않으면 다시 도전하기 쉽지 않을 텐데. 혹시 모르니 일단 동아리 이름과 소개글부터 작성해 두자. 


동아리 이름에서부터 막힌다. 지난 학생자치회 동아리였던 ‘평화어깨동무’라는 이름이 참 좋았는데, 이미 있는 동아리라서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어야 한다. ‘날개’를 뜻하는 순우리말인 ‘나래’가 불현듯 떠올랐고 앞에 자연스럽게 ‘평화’와 ‘상상’을 덧붙이고 보니, 진부하지만 홍보하기 좋은 동아리명이 탄생했다. ‘평화를 향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라!’ 동아리명이 정해졌으니 소개글은 생각나는 대로 후딱 써 버렸다. 내 고민을 전해 들은 지인은 동아리 소개글을 보더니 공존과 상생의 가치, 그 어딘가에서 사이비 단체 느낌이 난다고 했지만(!)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다. 업무 메시지는 계속 쌓이고 있다. 


일단 써 놓은 메모를 지지부진 갖고만 있다. 이렇게 무언가를 할지 말지 고민할 때는 마지막까지 우유부단 끌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그 순간,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버리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물론 이 원칙으로 후회도 많이 하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방도 를 못 찾았다.) 결국 순간의 마음에 이끌려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내버리고 만다.

 

선생님~ 희망 동아리 제출합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동아리 이름: 평화상상나래
-동아리 소개:
공존과 상생의 가치를 기반으로 개인, 지역사회, 한반도, 세계 평화에 대한 이슈를 살펴보고,
다양한 활동(독서토론, 평화기행, 평화달력 만들기 등)을 통해 평화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우는 동아리 
-비고: 사전선발

 

 

자, 이제 다음 단계는 아이들을 모으는 것이다. 동아리 조직 당일에 아무도 오지 않는 참사를 막기 위해 사전에 선발하기로 한다. 작년에 휴직을 하고, 재작년에는 거의 비대면 수업을 했던 터라 전교에 아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다. 그동안 동아리 아이들을 모았던 (친절한 척하면서 원래 알고 지내던 아이들을 꼬여내는) 전략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를 어쩐다. 기껏 용기를 내어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어쩌면 괜한 용기였을지도. 일단 개학 첫날 준비나 하고 생각해 보기로 하고 미뤄둔다.


3월 2일 개학 첫날. 정신없이 안내사항을 전달하고 교실을 마무리하는데, 한 학생이 들어오면서 굉장히 정중하게 말을 건다. 


“주예지 선생님, 맞으시죠?” 


옆에 있던 친구들이 그 아이가 나의 팬이라면서 잘 부탁드린다는 넉살을 부린다. 어라, 나를 아는 학생이 없을 텐데,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른다. 알고 보니 지난 동아리에서 출판한 책을 보고 내가 복직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자기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서 문예창작 자율동아리 지도교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 동아리의 이름이 문학‘나래’인 것이다. 옳다구나! 이제부터 서로 동아리 영입을 위한 공방전이 시작된다. 기회를 놓칠세라, 

 

“너도 (문학)나래? 나도 (평화상상)나래! 이건 운명이야. 동아리 활동을 통해 너의 날개를 펼쳐보자!” 


다소 광기 어린 나의 기세에 눌린 듯한 아이가 얼떨결에 자기도 평화상상나래 동아리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을 한다. 오예! 일단 한 명 영입 성공. 시작이 좋다. 


다른 학생들에게 어떻게 홍보할까 고민하다가 국어 수업 오리엔테이션 때 수업 소개에 슬쩍 끼워 팔아 본다. 담임 반 아이 몇 명이 개인 채팅으로 관심을 보인다. 비대면 수업 주가 끝나고 대면 수업이 시작될 때 예쁘게 포스터도 만들어 각 반에 부착해 본다. 사전선발 조직 완료까지 이틀 전, 들어온 지원서는 세 장. 마음이 조급해진다. 담임 반 아이들에게 동아리 지원서를 은근슬쩍 떠밀어 보기도 하고, 수업 들어가는 반 아이들에게 지나가듯이 넌지시 홍보도 해 본다. 정적 속에서 한 아이의 무미건조한 말이 날아와 꽂힌다.


“선생님 동아리에 애들이 안 들어오나 봐요.”


무안스러운 마음에 애써 쿨한 척 부인하다가 전략을 바꾼다. 솔직하게 속을 내보이며 한 번 더 동아리 홍보를 하고, 동아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내비친다. 그러고 나서 괜히 민망한 마음에 덧 붙여 본다. 


“나, 너무 구질구질하니? ^^;;;;” (또다시 정적----)


그렇게 해서 모인 14명. 대성공이다! 나 홀로 치열했던 동아리 조직이 끝나고, 이제 아이들과 한해살이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즐겁게 고민 중이다. 

 

주예지 ㅣ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지내는 국어교사입니다. 살아있는 국어 수업을 꿈꾸지만 여전히 길을 못 찾고 주변을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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