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읽는 북녘]
북한이 민족음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김양희
‘버드나무 잎이 코로나를 예방한다?’
북한이 최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의 코로나 예방법으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민간요법을 장려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북한에서는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호 약품들까지 동원해야 할 만큼 의약품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2년여 동안 국경을 폐쇄하고 무역을 최소화하다 보니 일반적인 물자들도 부족하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할 정도로 북한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노동신문> 등을 통해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금은화를 한 번에 3~4g씩 또는 버드나무 잎을 한 번에 4~5 g 씩 더운물에 우려서 하루에 3번 먹는다’는 민간요법을 적극 홍보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의 민간요법이 남한에 알려졌을 당시 일각에서는 “민간요법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되고 진짜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대책도 없이 국민들을 어려움으로 내몰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의 민간요법이 그 정도로 터무니없이 말이 안 되고 한심한 것일까?
동의보감에도 버드나무는 진통 효과가 있으며, 버드나무 가지를 달인 물로 양치하면 치통이 멎는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통제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버드나무 잎을 씹으면 통증이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알아내 환자들에게 사용했고, 1899년 독일의 한 제약회사는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살리실산(salicylic acid)으로 ‘아스피린’을 만들었다고 한다.
북한의 치료예방 사업은 ‘주체의학’의 발전을 위해 신의학과 전통의학을 병행·발전시켜 보건사업 전반에 획기적 전환을 이룩한다는 데 그 목표를 두고 동의학을 과학화하여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민간요법은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전염병 예방을 위한 노력을 하는 가운데, 서양의학에 근거해 발전시킨 남한과 달리 한의학을 발전시킨 고려의학을 내세운 의학적 견해 차이일 뿐, 아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민족음식, 민족적 긍지, 애국심 고양에 딱!
고려의학을 강조하는 북한은 의학뿐 아니라 음식, 옷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우리 것, 우리 문화를 보존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대외적으로 고립되었고,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한 식량 수입 제한과 농업 기계 가동을 위한 석유의 수입 제한, 홍수 피해로 인해 곡물 수확에 차질이 생기면서 주민들에게 배급을 제대로 줄 수 없었다. 이 시기를 북한 주민들은 미공급,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부르는데, 1990년대 중순 당시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으로 통계청 추산 총 33만 명의 주민이 사망할 정도로 큰 혼란을 겪은 바 있다. 당시에는 농민을 제외하고 전 국민의 70%가 배급제에 의해서 보름에 한 번씩 배급을 받아 생활했는데, 배급제가 붕괴되면서 주민들은 더 이상 월급이 나오지 않는 직장에 나가지 않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농촌은 물론이고 국경도 넘나들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식량난은 사회 곳곳에서 견고했던 질서에 균열을 냈고 이 같은 혼란은 체제의 안정적인 유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정신적으로 단단히 붙잡아줄 구심점이 필요했고 그 해법을 민족성과 애국심에서 찾았다. 민족성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음식문화도 예외는 아니어서 북한에서는 민족음식을 강조하고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같은 이유로 지금이야 북한에서도 외국음식 식당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민족음식 식당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4년 6월 20일과 24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에서 “민족음식을 적극 장려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선조들이 창조한 전통적인 민족음식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 애국애족의 정신을 심어주는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라며 민족음식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또한 북녘의 잡지 <력사과학> 2007년 2호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족음식을 발전시키자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족음식을 적극 장려하면서 새로운 료리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합니다”는 발언을 소개하고 있다. 민족음식의 장려를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5월과 2002년 9월, 2003년 1월과 2월, 7월을 비롯하여 여러 발언 기회를 통해 민족음식을 전문화하며 신선로요리와 같은 민족음식을 표준화하고 음식물가공을 현대화하여 주민들이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게 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요리 가공의 전문화·과학화·표준화·현대화 위한 투쟁 독려
지도자의 의지에 북한 당국은 민족음식의 특성을 살리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요리와 식료 가공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적극 노력했다. 음식 가공기술은 하루 이틀 사이에 좋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요리사들과 관련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요리 가공의 전문화·과학화·표준화·현대화를 위한 투쟁을 독려했다. 요리 가공을 전문화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요리가 아니라 한두가지 요리를 전문적으로 만들거나, 요리 가공의 한 가지 공정만 집중적으로 맡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식당별로 요리를 전문화하거나 한 식당 안에서 요리별로 인력을 전문화하는 방법, 또는 요리 가공 공정별로 전문화하는 방법을 채택하는 것이다. 이 시기 평양시 급양관리국산하의 시안의 모든 구역 종합식당들에 한 개씩의 민족음식전문식당들이 설립되었으며, 북한 당국은 정책적으로 군(郡)에 한 개씩의 민족식당과 대여섯 개씩의 민족음식 전문화 식당을 설립하도록 했다.
요리 가공을 과학화한다는 것은 요리를 과학적 원리에 맞게 가공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표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떡볶이 고추장맛조차 ‘며느리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비법’이라지만 북한에서는 다르다. 북한의 사회급양관리국은 평양 지방 민속음식의 제법을 표준화하고, 각 민족음식 전문식당들의 봉사업종들도 각 식당의 조건에 맞게 제법을 제정했다. 북한 당국은 표준화된 요리 가공방법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장철구평양상업대학, 인민대학습당, 옥류관, 청류관 등에서는 민족음식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다매체편집물(멀티미디어) <조선민족료리>, <메기료리>, <뱀장어료리>, <옥류관료리>, <청류관료리> 등을 만들어 배포하고 각 급식 식당이나 일반 식당의 주방장들을 국가적으로 유명한 식당 주방장들에게 보내 교육을 받게 하는 등 요리 비법이 널리 보급되도록 힘쓴다. 옥류관의 평양랭면을 지방에서도 그대로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북한 당국은 요리 가공을 기계화·자동화하여 힘들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을 현대적 기계설비로 대체하는 등 요리 가공의 현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편, 북한의 민족음식 사랑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무역의 위축 및 대북제재가 지속되면서 식재료를 북한 내에서 자체적으로 공급하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당국이 여전히 민족음식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김양희 | 전공을 살려 식품 전문기자로 일하던 중 운명처럼 <통일뉴스>의 민족음식이야기 칼럼을 쓰게 되었고, 이후 사람들이 친숙한 음식을 통해 북한을 떠올려보길 바라며 <평양랭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되갔구나>라는 책을 발간했다. 독자들과 함께 옥류관에 평양랭면을 먹으러 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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