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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3_1 이기범_절망에서 평화의 희망을 빚어내는 대화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2. 16.

[한반도 이슈] 

절망에서 평화의 희망을 빚어내는 대화

이기범(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

 

치비타 디 바뇨레지오

이탈리아에 죽어가는 도시가 있다. ‘치비타 디 바뇨레지오라는 도시인데 크기가 워낙 작아서 마을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에투리아 사람들이 외부 공격을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2500년 전쯤에 바위산의 깎아지는 절벽 위에 만든 마을이다. 그 마을을 죽어가는 도시로 부르는 이유는 지반이 약해서 침식과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고 마을이 점차 깎여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그 이름을 거부한다. 대신 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도시라고 부른다고 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마을을 고치고 살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절망이 몰아치는 절벽 끄트머리에서 희망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은 세상 곳곳에 늘 있다. 한반도의 남녘에도 있고 북녘에도 있다.

 

한반도의 평화 지반이 약한 상태에서 남과 북의 갈등이 더욱 커가는 것을 보면서 절벽 끝에 내몰린 절망을 느낀다. ‘죽어가는 한반도가 될 것 같아 불안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말에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다가선 현 상황은 핵탄(핵무기)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초에 열린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100,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죽어가는 한반도가 아니라 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한반도가 되는 길을 우리가 찾아야 한다.

 

남북관계가 험상궂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북정책을 몇몇 권력자들이 은밀하게 결정하기 때문이다. 북의 사정은 더욱 그럴 것이다. 당사자인 시민들을 배제하면 실제 삶과 동떨어지고 사회적 공감대가 모자란 상태에서 대북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런 잘못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난 모든 정부가 저질렀다.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는 시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므로 그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 시민들이 참여해야 한다. 시민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여 절망을 희망으로 변혁하는 과정은 숙의민주주의와 사회적 대화에 의해 촉진될 수 있다. 숙의민주주의와 사회적 대화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숙고하여 결정하는 절차이다. 시민 모두의 삶에 관련된 정책이므로 성인-시민뿐 아니라 어린이-시민학생-시민도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숙의민주주의는 각자의 의견을 갖고 대화를 시작하지만 합리적 추론능력을 증대하는 숙의를 거쳐서 더 타당한 결정에 도달하는 대화를 지지한다. 숙의의 뜻은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함이며, 숙의 과정은 유용한 정보를 이해하고 토론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의견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이다. ‘가짜뉴스나 제한된 정보에 의존하여 자신의 편견을 확정하는 경향을 벗어나서 숙의해야 한다. 그래야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높여서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는 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민관 위원회, 국민대토론회, 원탁회의, 공론조사, 공청회 등을 통해 숙의민주주의와 사회적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예컨대 다양한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평화통일 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를 구성하고 2018년부터 연인원 6천 명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여 2021통일국민협약안을 채택했다.

 

숙의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적 대화는 몇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에 따라서 남북의 대립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소통하고 합의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 현 위기에 대처하려면 어떤 선택이 가능하며, 자신은 어떤 선택을 어떤 이유에서 지지하는가를 발표한다.

 

() 각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제한되므로 새롭고 유용한 정보를 조사해서 어떤 선택이 타당한지를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한다.

 

() 가장 타당한 선택에 합의하고, 그 선택을 실행하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군사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정리한다면 위의 세 단계 절차는 이렇게 진행될 것 같다.

 

우선 ()의 선택을 단순화하면 세 가지로 정리될 것 같다.

 

(1) 남한이 북한의 핵 공격에 대한 대량응징보복능력을 강화하며 나아가서 핵무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한다.

 

(2) 남한은 적정한 수준의 방위력을 확보하고, 한미 공조를 통해 미국의 전략자산(장거리 전략폭격기,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 등)을 한반도에 배치하고 핵우산(핵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대신 핵보복 공격을 하는 체제) 구축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를 확장 억제한다.

 

(3) 1970년대 이후 남북 당국이 진행한 대화와 이룩한 합의(: ‘9·19 군사 분야 합의’)에 기초하여 무력시위를 중단하고 남북 대화를 다시 시도한다. 대화를 통해서 신뢰와 협력의 사례를 만들고 평화 정착과 공동 번영의 방안을 모색한다.

 

()의 단계로 세 가지 선택을 평가할 수 있는 정보를 획득해서 선택의 타당성을 토론한다. 보기를 몇 가지 들면 이렇다.

 

(1)의 검토: 미국 정부는 남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반대한다. 강행하면 한미동맹이 깨지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남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북한이 먼저 핵을 사용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질 위험이 촉발된다. “100, 1000배로 보복하는 대량응징보복은 국제법이 정한 비례성 등의 교전 규칙을 어겨서 전쟁범죄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핵무기 개발은 물론 대량보복 능력을 갖추는 데에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고 그 폐해는 매우 크다. 남한의 국방예산은 올해 57143억 원이고, 북한은 2019년 약 57582억 원을 군사비로 지출했다(미국 국무부 발표. 2022. 8.).

 

(2)의 검토: 한미동맹은 발전되어야 하지만 한미동맹이 한미일 동맹 혹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동일한 것으로 연결되면 북-중국-러시아의 동맹을 촉발하고 북의 군사력증강을 자극할 수 있다. 일본이 남한의 동의 없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시도와 대대적으로 군비를 확충하는 일을 막기 어려워지게 될 수 있다.

 

(3)에 대한 검토: 대화를 통해 평화를 증진한다는 방향은 타당하지만 현 상황에서 남북 대화의 계기를 만들기 어렵다. 과거에 대화를 했기 때문에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는 비판은 신중하게 분석해야 한다. 오히려 대화를 지체했거나 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 더 타당한 이유일 것이고, 그 이유를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은 핵 포기를 전제로 하는 대화를 거부하고 있고, 남한은 북이 핵을 포기하거나 포기할 것을 증명해야 대화를 시작한다는 입장에 끌리고 있다.

 

()의 단계로 타당한 선택에 합의하고, 그를 실행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행동하는 방향을 토의한다.

 

아마 (1)을 타당한 정책이라고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2)(3)을 결합한 선택이 가능하다. 우리가 적정한 수준의 방위력을 확보하고 적정한 수준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하여 북의 핵공격을 억제하면서 대화해야 한다는 선택일 것이다. 이 선택에 합의해도 적정한 수준이 어떤 수준인지를 토의하는 일은 여전히 남는다. 그리고 남북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도 모색해야 한다. 핵무기를 포기해야 대화한다는 단계적 입장에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대화한다는 동시적 입장으로 전환하는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당국 사이의 대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민간단체와 국제사회가 교류와 협력을 주도하는 방안도 토의한다.

 

시민들이 꾸준히 대화하고 합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시민들이 합의해도 정책에 반영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대화하지 않으면 합의가 어렵고, 어느 정도라도 합의하지 못하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시민들이 합리적 의견을 형성하도록 격려해야 시민 참여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 한반도 정책은 어린이의 삶부터 노인의 삶까지 그리고 현재의 삶부터 미래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민들이 남북관계의 타당한 방향을 토의하고 선택해야 한다. ‘죽어가는 한반도가 아니라 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한반도를 만드는 일은 제도와 정책에 의해 정착되어야 하지만, 그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데에 시민들이 참여해야 한다. 절망의 나락에서 평화의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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