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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3_2 심은보_코리밀라에서 함께 한 Nurturing Hope Summer School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2. 16.

[한반도 평화교육] 

코리밀라에서 함께 한 Nurturing Hope(희망 가꾸기) Summer School

심은보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홀로 산책을 했다. 그러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서 있는 십자가 앞에 섰다.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는 십자가가 아니라 땅에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십자가였다.

 

발 딛고 선 땅 위에 튼튼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십자가를 마주하며 나는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곳에 대해 생각했다. 또 내가 발 딛고 선 곳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일도 하늘 위에 솟아 있는 게 아니라 땅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저 십자가와 같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진행형인 코로나-19를 뚫고 내가 아직은 낯설고 먼 땅 북아일랜드, 그것도 코리밀라(Corrymeela)로 다시 찾아 온 까닭이 그것이기도 했다. 훌쩍 날아와 낯선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다시금 평화로운 세상을 일궈 가는데 내게 필요한 영감, , 용기, 희망, 사람, 연결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어쩌다 보니 두 해 반 만에 다시 코리밀라를 찾았다. 한 주간 코리밀라에선 희망 가꾸기(Nurturing Hope)라는 이름을 달고 10여 개 나라 70여 명이 함께 참여하는 평화교육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했다. 나는 박종호 선생님과 함께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을 대표하여 그 자리에 함께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배움을 찾아 떠나는 우리들의 여정은 다른 때보다 조금 험난했다. 비행기를 타며 실어 보냈던 내 짐이 더블린에 도착하지 않아서 짐 없이 여정을 시작해야 했고, 더블린에서 벨파스트로 가는 도중에 버스가 고장나기도 했다.

 

일요일 날 점심이 다 될 즈음 코리밀라에 도착하니 크리라고 하는 공간에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진행을 하고 있던 데릭 윌슨 박사님이 우리를 반갑게 소개해 주셨다. 세 가지 질문에 대해 간단하게 답하며 소개를 마쳤다. 한국에선 온 사람이 우리 말고도 한 분 더 계셨다. 권 과장님! 통일부에서 일하며 현재 북아일랜드에서 공부 중이라고 하신다.

 

점심밥을 먹고 사람들이 크리에 다시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오로지 질문을, 아니 질문만 하는 시간이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생각나는 질문을 했고, 나오는 질문은 종이에 커다랗게 적어 주었다. 그걸 듣고 있다 질문이 떠오르는 사람은 질문을 이어갔고, 누군가 답을 하려고 하면 답이 아닌 질문만 하도록 했다. 긴 시간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질문이 질문 속에서 이어지기도 했고, 질문을 만나며 질문이 솟아 나오기도 했다. 질문이 다른 나라에서 온 삶을 만나며 다른 맥락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딱히 답하지 않아도 질문들이 서로 연결되거나 또 질문들이 각자에게 돌아가 각자의 질문을 더욱 또렷한 빛깔로 만들어 주는 듯 했다. 결국 중요한 일은 다른 질문과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그걸 마중물 삼아 결국 나의 질문을 마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녁밥을 먹고 난 다음 일정은 함께 모여 앉아 노래도 부르고 춤도 함께 추며 어우러지는 것이었다. 시차 탓에 자꾸만 내려앉는 눈꺼풀은 어찌할 수 없었다.

 

월요일 오전엔 던컨 모로우 교수님과 모니카가 북아일랜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오전에 큰 강의실에서 전체가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면 오후엔 모둠을 나눠 각각의 장소에서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기가 속한 사회와 자기 맥락에서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화요일 일정이 시작되면서 어제 나눈 이야기를 통해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화요일 오후엔 한국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발표하는 시간!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부소장인 김동진 박사님이 우리 사회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이야기를 열어 주셨다. 뒤이어 권 과장님이 남북이 평화를 만들어 가던 과정 이야기를, 종호 선생님께선 어린이어깨동무 이야기로 이어가 주셨다. 그 뒤를 이어 나는 교사로서 평화교육을 어떻게 펼쳐 가고자 해 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보여 주었다. 쉬는 시간에 다가와 묻기도 하고 메일 주소를 받아가기도 했다. 북아일랜드 조이스 선생님(퇴임한 초등학교 교장)과는 개인적으로 조금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을 따로 잡았다. 모둠 활동에선 한국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국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기가 속한 나라, 자기가 활동하고 있는 공간에서 하는 관련된 나의 고민이나 내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야기 나눴다.

 

수요일 오전엔 콜롬비아 이야기를, 오후엔 북아일랜드 청소년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은 날마다 그랬듯 전체 이야기를 한 후에 모둠별로 여러 공간으로 흩어져 작은 숫자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피곤은 쌓여갔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이렇게 함께 또는 따로 모여앉아 엮어내는 에너지들이 참 좋았다.

 

수요일 점심밥을 먹고 1시간 가량 조이스 선생님과 구체적인 학교 이야기, 교실 이야기를 나눴다. 궁금한 것을 물으면 그에 대한 나의 생각과 실천에 대해 함께 나눴다. 또 조이스가 직접 진행했던 활동지도 보여주며 내게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평화를 만들어 가고, 교육을 하는 일에 대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많이 맞닿아 있었다. 각기 다른 이 두 사회의 교사와 교사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면 재미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 오전엔 전체가 함께, 오후엔 실천공간과 고민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둠을 이뤄 작은 모임이 이루어졌다. 저녁엔 평화를 비는 기도 모임이 크리에서 있었다. 원하는 사람들만 모였는데 나도 함께 해 보았다. 요란하지 않게 평화를 위해 조용히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일도 참 좋았다. 이어선 밸리캐슬에 있는 한 펍에 모여 뒤풀이를 했다. 야외 공간을 우리 멤버들이 독차지 하고 함께 맥주와 음료도 나누고 이야기도 나눴다.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일궈가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는 그들과 함께 하다보니 나도 맥주를 네 잔이나 마셨다. 희망 가꾸기란 이름을 달고 떠났던 한 주간 배움의 여정도 이렇게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마지막 날엔 모두 모여 앉아 각자에게 이 여행이 어떤 의미였는지 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눴다.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도 의미 있었지만 나는 머리가 희끗한 선배들이 이야기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희망을 가꿔가는 것은 이렇듯 연결되는 일 아닐까. 나를 넘어 너를 만나며 연결되고, 세계와 세대를 넘나들며 연결되어 가는 일 말이다. 그렇게 연결되어 가는 사이’, 사이 이 곳 저 곳에서 희망은 그렇게 피어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20241월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 선생님들 스무 분과 함께 다시 북아일랜드 코리밀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앉아 ‘Nurturing Hope’ 교재를 바탕으로 워크숍도 하고, 우리가 실천했던 평화교육 이야기도 나누며 작은 연결들을 시작하고 있다. 내가 발 딛고 선 곳에서부터, 나로부터 가꿔가는 그 이야기들이 크고 작은 연결들로 이어져 희망을 꽃 피워낼 수 있다면 좋겠다.

 

 

심은보 |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평화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란초를 배움터이자 삶터 삼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구호와 이론보다는 실천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믿음과 교육이 희망을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행복한 학교를 꿈꾸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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