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4_6 최관의_우리는 껌부 사이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5. 18.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우리는 껌부 사이 

최관의

 

관샘! 우리 봐요!

6학년 115명에는 마음 쓰이는 아이들이 반마다 서너 명씩 있다. 조금 깊이 따지고 들면 마음 쓰이지 않는 아이는 없지만 어지간한 아이들은 이리저리 알맞게 흔들리면서 클 거라는 믿음이 있다. 마음이 쓰이지만 다른 반 아이들이라 늘 곁에서 뭔가 교육적인 자극을 주기는 어렵다. 만날 때마다,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붙잡고 말을 건다. 

수업 시작하고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교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세 녀석이 있다. 교실에서도 수업 흐름을 방해하고 분위기를 흔들어 담임으로 하여금 머리 아프게 만드는 아이들이다. 한 번은 비가 제법 쏟아지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 창밖 운동장을 보니 세 녀석이 일을 벌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화단에 물 주려고 설치해 놓은 호수를 들고 물을 뿌리며 논다. 물장난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 들어붓는다. 이 날씨에 감기 걸릴 텐데 어쩌려고 저러나 싶어 걱정하며 밥을 먹는데 갑자기 이 세 녀석에다 한 명 더 해 넷이 내 앞에 나타났다.


“관샘! 우리 봐요.”

자기들이 뭐 큰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활짝 웃으며 밥 먹고 있는 내게 말을 거는 거 아닌가. 친구 한 명까지 덤으로 끼어 네 명이 물을 뚝뚝 흘리면서 밝은 기운, 다른 아이들에게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펄펄 날을 듯한 기운을 뿜어내며 내 앞에 서 있다.

“웬 물에 빠진 강아지들이냐?”
“비 맞고 놀았어요.”
“아이고, 비는 무슨 비야. 물 틀어서 호스로 장난치는 거 내가 다 봤는데.”
“관샘, 운동장 돌아다니다 흙 묻어서 닦은 거에요. 진짜인데.”
“그럼 아까 호스로 물 뿌린 게 닦는 거야? 재미있기는 했겠다. 얼굴에 ‘나 지금 행복해요.’라고 써 있네. 그런데 이제 추워서 어쩔 거냐? 에라이 이 놈들아. 수건도 없고 추워서 어째?”
“관샘, 걱정마요. 화장실 가서 휴지로 닦으면 돼요.”
“뭐? 휴지로? 이 고약한 놈들. 화장실 휴지를 누가 뭉치로 쓰고 아무렇게 버리나 했더니 너그들이구나. 아이고, 정말.”

그런데 이 놈들이 밉거나 화나기는커녕 교직 생활하면서 아이들에게서 이런 기운을 느껴본 게 언제인가싶다.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자연스런 기운을 억누르고 교실 의자에 앉아 있는 흐름에서 벗어난 아이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이다. 온몸을 마음껏 움직이며 친구들과 뒹굴 때만 나오는 기운을 느끼니 이 녀석들이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워졌다. 밥 먹다말고 숟가락을 내리고 핸드폰을 들었다.

“어이, 내가 좋아하는 형님들! 이 추운날 물놀이 기념으로 사진 촬영하자고. 어깨동무하면서 다정한 척해봐.”
그 가운데 가장 기운이 넘치는 석준이가 애들을 끌어모아 어깨동무를 한다.
“애들아, 이리와. 이렇게 하면 돼요?”
“좋아. 좋아.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다. 지금 그대로 수업해도 될려나 모르겠다. 감기 걸릴 텐데.”
“걱정마요. 우리는 감기 안 걸려요.”
“내 말 들어. 담임선생님께 가서 사정을 말씀드려. 너무 추우면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화장실 휴지를 마구 쓰지 말라는 잔소리가 목에서 올라오는 걸 참았다. 그 날 이 네 녀석은 젖은 옷 입고 수업을 마무리하고 하교 했지만 한 놈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저 녀석들이 교실 밖을 헤매고 다니는 까닭을 알겠다. 저 놈들에게 교실에서 사는 건 스님 벽면수도하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 게 틀림없다. 숨 쉴 구멍을 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껌부 사이 

열 시, 교과시간이라 1층 교무실에 볼일 보러 내려가다 등교하는 옆 반 현욱이를 계단에서 만났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는 그 모습을 위에서 한참 바라봤다. 어깨는 축 쳐지고 느리게 한 칸 씩 들어 올리는 발걸음에는 힘이 빠져 있다. ‘오기 싫은데 억지로 오는 거다.’라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다. 

“현욱이구나.” 
“…….” 
“현욱이 성님, 아는 척도 안 할래?” 
“…….” 
입은 다문 채 고개만 숙인다. 
“고맙다. 불쌍한 관샘 생각해서 인사를 받아줘서. 오느라 수고했다.” 

고개만 끄덕이고는 나를 소 닭 보듯 하며 올라오던 그 발걸음 그대로 느릿느릿 걸어 올라간다. 옛날 같으면 ‘저 녀석 봐라. 내가 있는데도 어려워하지 않고 저 꼬라지로 올라가? 저 녀석이 내 말을 무시해?’하고 성질이 올라올 텐데 그보다는 ‘저렇게 마음의 힘이 약해지도록 만든 게 뭘까?’, ‘어떻게 힘을 주지?’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니 나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쓰이는 아이들 가운데 현욱이는 남다르다. 모든 학습과 활동에 의욕이 없다. 학습준비물을 잘 갖추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해야 할 과제에도 별 관심이 없다. 학교에 오는 시간도 들쑥날쑥하다. 다행인 건 늦 더라도 학교에는 꼭 온다. 늦게 오는 것만이라도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른다. 늦더라도 학교에 오는 저 힘을 씨앗삼아 조금씩 변화를 줘보자고 담임과 이야기 나누었다.
 
늦게 올 때 만나면 옆 반 담임인 내가 반갑게 인사를 해도 서운할 정도로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기만 하던 녀석이 어느 날 내 말에 대꾸를 한다. 물론 그날도 아홉 시 반 넘어 등교하는 중이었다.
 
“너 아침 먹고 오냐?” 
“…….” 
“나한테 물어볼래? 아침 뭐 드셨냐고 물어봐.” 
“관샘, 오늘 아침에 뭐 드셨어요?” 
이 놈봐라. 내게 말을 걸다니. 그것도 웃으면서. 
“내가 샐러드를 좋아해. 샐러드 소스를 만들어서 채소샐러드를 만들어 빵이랑 먹었지.” 
“너는?”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늦게 일어났어요.” 
“몇 시에 자?” 
“열두 시 다 되어 자요.” 
“그래. 그러면 늦게 일어나는 게 당연하지. 나라도 그러겠다.”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 늦게 자는 거야 뻔한 건데 더 물어보면 모처럼 연 입을 닫게 만들 거라 다음으로 미루었다. 담임이나 다른 선생님들이 그 잔소리는 여러 번 했을 거고 그럼에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건데 공연히 잔소리 한 번 더 해봐야 역효과 날 게 뻔한 거니 까. 

“웬만하면 아침 먹어. 요즘 너 키가 쑥쑥 크던데 그러다 나중에 병난다. 꼭 밥 챙겨 먹고 와.” 
“네. 알았어요.” 

묵언수행하는 스님처럼 입을 닫고 살던 녀석이 나랑 말을 주고받았다.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쓸 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가벼운 수다만 주 고받으며 지내던 어느 날 하교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정문에서 하교하 고 지친 몸으로 터덜터덜 걸어 본관 쪽으로 향하는데 맞은편에서 현욱 이가 껌을 맛있게 씹으며 오는 게 보인다. 

“현욱이 성님, 뭘 그리 맛있게 드시나?” 
사실은 학교에서 군것질하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고 싶은 걸 참고 장난을 건거다. 

“껌이에요.” 
“껌? 맛있냐?” 
걸음을 멈추더니 주머니를 뒤적이며 뭔가를 꺼내 든다. 
“관샘, 껌 드실래요?” 
“껌? 야, 어떻게 네 걸 먹냐? 나중에 선생님이 아이들 껌이나 삥 뜯어 먹는다고 하는 소리 들으면 어쩌려고?” 
“드리고 싶어서요.” 
“좋지. 현욱이 껌인데 먹어야지. 그러면 그냥 주지 말고 반을 까서 줘. 한 입에 쏙 들어가게.” 
환한 얼굴로 정성껏 반을 벗겨서 내민다. 예뻐 죽겠다. 
“너는 껌 봉투 들고 난 껌 들고 셀카 찍자?” 
사진을 찍고 헤어지며 녀석을 꼭 안아주며 귀에다 대고 말했다. 

“우린 어떤 사이?” 
“깐부 사이.” 
“아니고. 그게 아니고 껌을 나누어먹는 사이니까?” 
“껌부 사이!” 
“좋다. 이제 우리는 껌부 사이다.” 
그 뒤로 어디서 만나면 큰 소리로 떠벌린다. 
“우린 어떤 사이?” 
“껌부 사이!”


최관의 | 6학년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서울이수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살고 있다. 마음껏 어린 시절을 누리지 못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 『열일곱, 내 길을 간다』, 『열아홉, 이제 시작이야』(보리)를 썼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