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이슈]
후쿠시마 오염수와 우리의 선택
이충식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는 방사성 물질을 고도 정수 처리한 후 기준치 이하로 방류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인 IAEA의 조사보고서나 미국 정부, 그리고 우리 정부도 역시 일본의 주장을 지지한다고 발표하였다.
반면 우리 국민은 이런 움직임에 불안감과 반대 뜻을 보이고 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고 응답하였고, 거의 비슷한 비율로 일본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불신감을 나타내었다.
우리 정부는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처리되어 방류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방류를 반대하는 쪽에서 불안을 조성하는 괴담을 퍼뜨린다고 주장하였다. 우리 국민의 불안은 천일염을 대량 구매하는 해프닝으로 나타났다. 정말 오염수 방류는 안전한 것일까, 정말 과학적이고 우리에게 주는 피해는 없는 것일까? 국민은 혼란스럽다.
근대화와 부작용의 20세기
고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한 21세기에, 세분화된 전문 분야의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지난 세기 우리 문명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20세기는 전례 없는 평화와 과학기술의 번영을 꿈꾸면서 시작하였다. 전화와 무선통신, 철도와 자동차, 고층건물과 엘리베이터에 이르기까지 현대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 개발되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시민혁명, 참정권 운동을 통해 태어난 민주주의를 비롯한 사회주의, 민족주의, 급진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정치 체계와 문화가 발전하였고, 혁신적인 과학과 기술이 발전을 계속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었다.
이런 희망은 2차례의 세계 대전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원자폭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로 인하여 사그라졌다. 전쟁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된 과학기술은 냉전 속에서도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물질적 풍요를 인류에게 가져다주었지만, 이 과정에서 환경오염, 자원의 고갈, 부의 양극화 등 부작용을 함께 주었다.
20세기는 역사적으로 서구사회 산업혁명의 연장선 위에서 발전해 왔으며, 가장 중요한 가치의 척도는 “발전”이었다. 하지만 발전된 과학기술의 부작용이 커지면서 이런 가치 척도의 변화가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런 가치 척도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독일의 울리히 벡 (Ulrich Beck)이었다. 1986년에 발표한 벡의 책, “리스크사회”에서 그는 이 변화를 제1근대화에서 제2근대화를 향한 변화로 해석하였다.
무성찰적 근대화와 성찰적 근대화
벡은 서구 근대화 정신의 발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부의 생산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무성찰적 근대화 시기를 제1근대화의 시기로 정하고, 제1근대화 시기가 지나가고, 부의 생산보다 위험을 생산하지 않는 성찰적 근대화, 제2근대화의 시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전환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은 첫 번째, 어느 정도의 사회적 풍요가 실현되고, 두 번째, 이 부의 생산과정에서 인류의 생존기반을 위협할 정도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었다. 서구 선진 사회에서는 1960년대부터 이런 조건을 채우기 시작하여 제2근대화로 전환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런 제2근대화의 완성 형태를 “리스크사회”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제1의 근대화, 무성찰적 근대화시기는 부의 생산과 분배가 위험생산의 논리를 지배한 시기였다. 이 시기는 어떻게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추출하여 부의 생산에 이용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의 문제는 ‘물질적 궁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목표에 의도적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 시기에 위험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공공연하게 금기시되거나 무시되었는데, 이런 행동은 ‘괜한 걱정을 하는 것’ 또는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사회적 위험은 ‘대형 사고’와 방류 기준으로 인한 ‘잔류 독성’의 집적에 의한 환경피해라고 할 수 있다. 대형 사고는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아무리 작을 지라도 한 번의 사고로도 큰 피해를 얻는 사고”로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인도 보팔의 가스유출사고와 같은 사고이다. 반면 방류 기준에 의한 독성 사고는 그 유독물질의 집적, 축적, 상승효과로 인하여 나타나는 사고이다. 과거 살충제나 농약으로 사용된 DDT의 축적이나 스프레이 충전제나 냉매로 사용된 프레온에 의한 오존층 파괴와 같은 사고이다.
반면에 제2의 근대화, 성찰적 근대화에서는 위험을 피하는 것을 부의 생산과 분배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물질적 궁핍이 어느 정도 해결된 선진 산업사회에서는 위험을 생산하지 않을 수 있는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 기술 발전과 경제 발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과 부정적인 효과를 어떻게 자연에 내보내지 않을지, 개발의 부작용과 부담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가하지 않을지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물질문명이 가지고 있는 자기 파괴의 잠재력, 위험, 부작용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근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험과 리스크
위험은 부의 생산과 분배가 지배적인 시대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서 위험은 ‘잠재적인 부작용’으로 취급되었고,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수 있는 것으로 “선택”되었다. 경제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면 공해나 산업재해, 인권문제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낯선 말은 아니었다. 오염물질의 방류 기준이나 대형 환경사고에도 위험은 선택된 것이었다. 특히 과학자나 행정당국자, 회사의 의사결정권자가 정한 허용기준과 안전 기준에 의해 선택된 것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부의 생산과 분배를 우선한다면, 잔여위험 (판단이나 정책으로 정한 통제 범위 밖의 위험)을 낳을 수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독성을 허용한다면, 그 허용치를 법으로 정하는데, 법으로 정한 수치의 독성보다, 그렇지 않은 독성이 더 중요해진다고 벡은 말한다. 왜냐하면, 이 잔여위험의 독성은 독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며,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유통되기 때문이다. 허용치는 법이 침묵하고 있는 부분이며, 그 공백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리스크사회의 ‘리스크’(Risiko, risk)의 개념에는 선택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말에서 위험은 리스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서양의 개념은 위험과 리스크에 차이가 있다. 위험(Gefahr, danger)은 나와 관련이 없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위험이라고 한다면, 리스크(Risiko, risk)는 내가 관련된 상황에서 선택에 앞서 행동의 결과를 예측했을 때 나타나고,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리스크는 선택한 위험인 것이다.
리스크사회에서 위험은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근대 사회에서 여러 문제로 발생된 위험은 선택의 문제였다. 따라서 20세기에 우리가 추구했던 진짜 근대화는 위험을 생산하던 근대화에서, 위험을 선택하지 않는 것으로의 전환이다. 곧 위험을 선택하지 않는 것, 위험의 허용치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선택을 전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과학이 결정하고 당국자가 선택하였던 위험을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과학에 의한 위험의 판단, 결정을 중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리스크사회는, 우리가 결정한 선택이 일부러 잘 안 될 가능성을 미리 파악해서 이에 준비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고, 이 방법이 없을 때에는 선택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도 있는 사회이다. 결정을 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태도에 비하면, 귀찮고 부정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도의 과학기술로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생활하고 우리가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태도와 판단 역시 필요하다. 이런 신중한 태도와 자세가 우리 사회의 메커니즘에 적절하게 녹아들어 간 사회가 리스크사회라 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성찰
오늘날 세계의 가치 척도는 발전에서 지속가능성으로 바뀌었다. 분명한 한계를 가진 지구 안에서 건전한 생활과 세대를 넘어선 지속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성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간다운 생활에서도, 세대를 넘어선 지속가능성의 실현 과정에서도 위험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위험은 다른 사람에 미치는 위험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물과 공존에 있어서도 없어야 할 것이며, 후세의 생활을 위한 물질순환 과정에도 마찬가지로 위험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리스크와 근대화 관점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위험의 선택이며 후퇴의 선택이다. 성찰적 근대화라는 미래의 입구에 이미 들어서있는 우리가 부의 재생산이라는 과거의 가치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에게 발목을 잡혀 있는 것 같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 사람들이 위험을 선택한 과학자들이고, 우리가 선택하여 우리 권리를 위임받은 정치인이란 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역시 위험을 선택한 셈인 것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는 성찰적인 근대화 정신 위에서 가능할 것이다.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위험을 선택하지 않는 리스크사회의 실현이 필수적이다. 이 사회의 실현을 위해 우리의 선택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다.
이충식 | (사)환경교육센터 센터장. 물리와 환경과학을 전공하고,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재단에서 일했다. 사업 기획, CSR, 환경경영 관련된 일을 하다가 환경교육을 하고 있다. 다시 현장에 서고 싶다.
'피스레터(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스레터 No36_5 최관의_관샘의 뻘짓 그리고 마무리 (0) | 2023.11.17 |
---|---|
피스레터 No35_1 김성경_전쟁을 살아가는 것 (0) | 2023.08.17 |
피스레터 No35_3 이경수_북한 식량위기를 둘러싼 두 가지 맥락 (0) | 2023.08.17 |
피스레터 No35_4 김경민_부끄러운 과거와 마주할 용기 (0) | 2023.08.17 |
피스레터 No35_5 심은보・최관의_서이초 박선생님을 추모하며 (0) | 2023.08.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