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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5_3 이경수_북한 식량위기를 둘러싼 두 가지 맥락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8. 17.

[평화의 시선으로 보는 북녘] 

북한 식량위기를 둘러싼 두 가지 맥락

 

이경수

 

코로나19 이후 북한이 국경을 닫은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그동안 북한이 뉴스의 초점이 된 사례는 수차례의 미사일 발사와 열병식, 윤석열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과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대응이 주를 이룬다. 사실상 서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위협을 주고 받는 것이 남북 당국간 대화의 전부다.

그 기간 동안 북한 주민들은 대북제재와 자연재해, 코로나19 상황으로 ‘3중고’를 겪어 왔다. 2020년 1월 선포된 ‘비상방역체제’ 하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고 지역간 이동이 통제되었고, 2022년 5~7월 환자 발생 이후 ‘최대비상방역체제’ 하에서 고강도 방역정책에 적응해 왔다. 2018년 이후 수출이 사실상 막힌 데 이어 2020년 이후 국경을 봉쇄하면서 수입마저 급감해 대외무역은 과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외부적 강제와 내부적 선택에 따른 대외경제 단절 이후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에 준하는 식량난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난의 행군’ 시기는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와 자연재해로 북한에서 수만에서 수십만의 아사자가 발생한 때를 의미한다. 이때 북한은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남한에서 이에 호응해 민간 차원의 북녘동포돕기운동이 진행되었고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가 결성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위기가 언급되는 맥락은 이전과 같지 않다.

 

 

북한 미사일 발사 비판의 재료가 된 식량위기

 

아사자와 관련한 남한 당국의 언급은 지난해 중반부터 등장했다. 2022년 7월 대통령실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당시 진행되었던 아사설을 우회적으로 공식화했다. 같은해 12월에는 정부 관계자가 함경북도 지역에 다수 아사자가 발생했다고 언급했으며 북한 모든 주민이 46일간 먹을 수 있는 쌀 50만톤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사일 발사에 탕진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식량위기가 언급된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2023년 2월 연합뉴스가 개성 내 아사자가 수십명 발생했다고 보도하고 통일부 당국자가 이를 확인하면서 아사자 발생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정부 관계자는 ‘고난의 행군’에 버금가는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재원을 미사일 도발에 쏟아붇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도 “북한 내 아사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주민 인권과 민생을 도외시하며 대규모 열병식과 핵 미사일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음을 개탄”한다고 했다. 북한 식량난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3월 정치적 고려 없이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열려 있다”고 했으나 7월에는 통일부가 대북지원부가 되었다고 질타했다. 그간 인도적 위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후속 조치가 진행된 바는 없다. 대북지원에 대한 엇갈리는 언급 속에서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을 고통에 대한 고려는 찾을 수 없다.

 

 

식량위기 수준 과장되었을 가능성

 

이제 북한의 식량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자. 북한의 식량 부족은 오래된 문제다.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몇 십년만의 유례 없는 식량위기가 발생했다면 북한 내 곡물 가격이 유의미하게 상승해야 한다. 북한 시장에서 유통되는 쌀과 옥수수 등 곡물 가격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상승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 시장내 쌀 가격은 2022년 중반 최고점인 6,600원대를 기록한 이래 하향하는 추세다. 2023년 7월 현재 쌀 가격은 5,400원대로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이전의 쌀 가격 4,500원대보다 20% 가량 높지만 최근 들어 가격이 급등한 것은 아니다. 쌀 가격이 급등한 시기는 2022년 상반기로 당시 북한은 코로나19 환자 발생 이후 ‘최대비상방역체제’를 선포한 시기다. 식량 수급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지금이 아닌 당시에 문제가 발생했을 개연성이 더 높다.

 

 

전년 동월대비 변동률을 보더라도 최근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2021년과 2022년, 그리고 2023년 현재까지 변동률 추이는 유사하며 변동폭이 줄어드는 추세다. 2021년과 2022년 북한 식량 상황에 대해서는 국경 봉쇄 이후 가격 상승과 식량 수급 악화가 예상된 것과 달리 전반적인 수급 상황이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올해 상황보다 그 전의 상황이 더 열악했으며, 그보다 악화되었을 가능성은 적다. 물론 수요량을 만족시킬 정도로 식량 상황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소 필요량은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북한의 2022년 곡물 생산량은 451만톤으로 2021년 469만톤 대비 감소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곡물 수입이 없었고, 2022년 하반기 옥수수 5.5만톤, 쌀 7.4만톤 등 12.9만톤을 수입해 전년과의 차이는 5톤으로 줄어들어 심각한 식량난을 야기할 정도로 공급량이 감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3년 7월 통일부 장관도 북한이 곡물을 수입해 식량 가격이 안정화되었다고 밝히고 시장이 아닌 국가가 식량을 공급하면서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사자가 발생하는 지역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두 진술에는 모순이 있다. 북한은 시장 가격보다 낮은 고정가격으로 양곡판매소에서 쌀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적 공급을 통해 식량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식량 수입이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려면 국가 공급의 정상적인 작동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역별 격차는 있으나 쌀과 옥수수 가격은 증가세가 둔화되다가 ‘보릿고개’가 잦아든 7월부터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지금까지는 식량위기 수준이 과도하게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검토해 보았다. 이후 감소세가 유지된다면 북한 식량위기에 동원된 ‘고난의 행군’, ‘아사자’ 등의 수식어는 정치적 의도에 따른 과장으로 확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에라도 인도적위기 상황을 수차례 강조하면서도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는 대신 북한 비판에만 활용해 온 사실은 북한 주민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외면한 사례로 남을 것임은 물론이다.

북한 주민들은 현재 최소 수준에서 ‘3중고’를 감내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식량위기는 5년 이상 장기화되었다. 대북제재가 본격화된 이래로 북한 주민들이 결핍을 겪는 상황은 당연시되어 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준수되어야 하는 인도주의 원칙은 제재를 이유로 회피되었다. 그러나 결핍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제라도 북한 주민의 결핍을 완화하기 위한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그들의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인가.

 

* 참고자료 
정승호, 2021년 북한 시장 물가 및 환율의 추세와 특징, KDI 북한경제리뷰 2022년 1월호. 
김영훈, 북한 식량・농업의 동향과 전망, KDI 북한경제리 뷰 2023년 1월호. 
김일한, 최근 북한의 식량문제 평가와 전망, 극동문제연 구소 한반도 포커스 2023년 5월.

 

 

이경수  2000년대 남북간 교류와 협력 실험이 활발하던 시기를 <민족21> 기자로 남북관계 현장에서 보냈다. 2010년대 이후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이제 기자가 아닌 연구자로 평양에 갈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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