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관샘의 뻘짓 그리고 마무리
최관의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지낼 날이 이제 사십이 일 남았다. 아이들과 함께해온 서른아홉 해. 참으로 많은 이들과 인연을 맺으며 지나왔다. 올해는 육학년 담임을 하고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오르락내리락하고 주변을 거친 말과 행동으로 긁으면서도 베풀고 품고 이해하는 초보 사춘기 아이들과 지내니 밝고 힘찬 기운이 올라온다. 대신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 잠이 쏟아지지만 잠깐 쉬고 나면 만났던 수 많은 아이들이 떠오른다. 오늘은 지난 인연 속 아이들 가운데 안타까운, 미안한, 애잔하고 슬픈, 보람있는, 뿌듯한, 아쉬운 같은 온갖 색깔과 진하기의 느낌이 드는 아이들 이야기를 짧게 짧게 하려 한다.
밥은 먹었냐
“오늘도 늦었구나. 일찍 다녀라.”
“늦잠 잤어? 늦으면 되겠니. 좀 부지런히 준비해봐.”
늦게 오거나 결석이 잦은 아이들에게 던지던 말이다. 그냥 다들 그렇게 표현하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머릿속에서 새기고 새기다 하는 말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무난한 말이기에 나도 그렇게 하며 교사생활을 했다.
“조금이라도 아이들 삶으로 들어가려 노력해보자. 그러면 다르게 보일 거야.”
“아이들 삶이 먼저야. 공부나 규칙 그런 거에 얽매이지 말고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하루하루의 삶을 보아야한다고.”
이오덕선생님과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만난 선생님들 그리고 닮고 싶은 주변 선생님들을 가까이하는 동안 내 안에 자리 잡은 교육철학이다. 그러면서 지각이나 결석이 잦은 아이들의 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저런 일로 학교가 재미없어서, 부모님이 아파서, 부부싸움이나 이 혼 때문에, 밤늦게까지 뭔가를 해서, 공부하느라 지쳐서, 몸이 아파서, 우울해서, 동생이랑 밥 챙겨 먹고 뒷정리하고 오느라, 그냥 밍기적 거리다 등, 그 까닭은 끝이 없다. 교실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도 그 만큼 갖가지다. 온 세상의 무거운 짐은 다 진 듯 축 쳐진 어깨로 고개를 숙인 채 발을 질질 끌며 오는 아이, 긴장한 얼굴로 빠른 걸음으로 걷는 아이, 마지못해 짜증을 내뿜으며 걷는 아이, 밝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오는 아이 등.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밥은 먹었냐?”
“어이, 형님! 우리 한 번 안아보자.”
“아침 안 먹었다고? 오늘은 너 때문이라도 점심 먹으러 서둘러 가야겠다.”
“에라, 이 녀석아. 어제도 늦고 오늘도 늦고. 그래도 오늘은 5분 빨리 왔네.”
어머니만의 시간을 가지세요
“어머니, 입학하기 전에 저랑 만나 아드님 동선을 살피고 교실을 어디에 두는 게 좋을지, 필요한 시설은 무엇일지 의논하고 싶습니다. 그런 뒤 아드님도 만나서 교실과 학교에 익숙하도록 연습을 하지요. 저랑도 친해져야 하니까.”
앞을 못 보는 녀석의 일 학년 담임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처음 통화한 내용을 간추렸다. 부모님만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온 식구들이 회의에 회의를 한 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나와 만났다. 약시도 아니고 앞을 못 보는 아이 담임이라 나도 두렵고 걱정이 되었지만 함께 지내면서 많은 걸 깨닫고 배웠다. 더 알차게 시간을 못 보내 미안한 마음을 늘 갖고 있지만.
어머니를 만나 등교 방법, 교실까지 엘리베이터를 탈 것인가 걸어 올라갈 것인가, 화장실은 어떻게 가야 할까, 사물함은 어디에 두고, 친구들 이름은 어떻게 알아가게 할까, 점자를 어디에 붙이고, 학교 안에서 움직일 때 필요한 시설 종류와 설치 방법 등 하나하나 아주 섬세하게 의논했다. 그런 뒤 필요한 시설은 행정실에 설치를 부탁하고 사물함과 책상마다 점자로 아이들 이름을 써서 붙였다. 교실 위치를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에 오가는 방법을 배우기 알맞은 곳에 잡았다. 무조건 아이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난이도를 조절해 움직임을 넓혀가기로 하면서.
시원한 그늘이 좋아지기 시작하던 오월 중순 무렵, 어머니와 학교 운동장 옆 나무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아이도 저도 많이 편해졌어요. 아이가 학교 오는 걸 좋아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점자공부나 여러 가지를 챙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해 늘 마음 한 구석이 아립니다. 그래도 어머니나 아이 모두 밝아서 제가 많이 배워요.”
“소리, 촉감, 맛으로 세상을 배우게 해주려 하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3월보다 수척해진 어머니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날마다 아이 등하교 시키고 여기 저기 치료와 점자교육 시키러 다니느라 힘들어보이세요. 몇 번 생각하다 말씀드리는 건데.”
잠시 멈췄다.
“어머니만의 시간을 가지셔야 합니다. 때로는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여행도 가고 카페도 가고 좋아하는 거 배우러도 다니세요. 하루이틀에 끝날 일 아니잖아요. 무엇보다 남편분과 뜻이 잘 맞아야 아드님 성장에도 도움이 됩니다. 두 분 행복하셔야 해요.”
어머니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공연한 말씀 드렸네요. 죄송해요.”
그러고 얼마 뒤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아이 맡기고 두 분이 일주일 동안 해외 여행을 떠나신단다.
“선생님, 오래 오래 우리 두 사람 사이좋게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했어요. 고맙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좋게 받아주셔서 너무 기뻐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면서 즐겁게 지내셔야 해요. 힘을 모아야 아드님에게 그 힘을 주니까요. 아니 그냥 두분을 위해서.”
하루하루 그냥 살아간 것이 교육
내부형 교장을 할 때 정신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어머니가 학교 뜰을 거닐면서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교장선생님, 우리 아이 열심히 가르치고 노력하면 좋아질까요? 지쳐요. 해도 해도 변화가 안 보이는 것 같아서요. 자꾸 주변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항의할 때면 더 그래요.”
난 그 순간 교사 마음으로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겁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솔직히 나도 맞닥뜨리고 있는 끝을 알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벽이 있기에.
“어머니, 저는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앞에 올 때마다 이런 생각하며 살아요. ‘그래. 그냥 살아가는 거다. 하루하루 사는 거야. 정성껏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누구나 그런 거 아닌가 해요. 특히 교육은. 그런데 변화가 있어요. 그 변화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아이 담임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말씀을 하는 게 아닌가.
“엄마와 상담할 때 교장선생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는 거에요.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라는 말이 큰 힘이 되셨대요. 저도 아이를 볼 때면 무기력해지곤 했는데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큰 힘이 났어요.”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그 아이가 만나기만하면 괴롭히는데 선생님은 뭐하시는 거예요? 그거 하나 해결 못하세요? 방임하시는 거잖아요.”
내가 그 동안 만난 학부모가운데 가장 힘든 분은 교사가 말만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믿는 분들이다. 교사를 하느님, 부처님과 동기동창이라고 믿는 분들.
“말씀만 하시라 곧 이루어지리라.”
어느 해 오 학년 담임할 때 아이 보는 앞에서 이런 항의를 받았다.
“선생님, 우리 딸이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아이들하고 어울리지 못하면 선생님이 책임지고 도와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머니, 이런 이야기는 따님 없는 데서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왜 피하세요! 오죽하면 제가 이러겠어요. 어떻게 하실 거에요!”
나는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매서운 눈으로 어머니 눈을 뚫어져라 보면서 말했다.
“어머니!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게 교사로서 할 말이에요.”
“부부싸움 해보셨습니까? 화해하면 그 다음날 바로 감정이 돌아오던 가요? 씨앗 뿌리면 하루 이틀 사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던가요? 교육은 그것보다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만 돌아가시지요. 따로 상담을 잡는게 좋겠습니다.”
인사하고 돌아섰다. 물론 그날 퇴근 무렵 어머니와 통화했고 상담을 잡았다. 그 다음 날 상담하기로.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따님이 힘든 상황입니다. 알고 있어요. 이 일은 하루이틀 걸리는 게 아닙니다. 저도 따님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도 그걸 원하시는 거지요? 저와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저와 맞서시겠습니까? 저는 아이를 도울 여러 길을 알고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손을 잡지 않으면 이 모든 것 가운데 대부분은 쓸모가 없습니다. 손을 잡으면 길이 열립니다. 그것만은 자신합니다.”
그 뒤로 보름 정도는 날마다 전화통화를 했고 자주 얼굴 보고 상담도 했다. 아이를 가운데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새 부모의 불안감이 많이 가라앉았다. 아이 얼굴도 밝아지고.
교사로 살아온 길에서 내가 쌓은 실적을 서류로 만들 수 있을까? 실수와 잘못 그리고 잘한 일 모두 다 포함해서 말이다. 보고서 만들어 교육부에 보고할 수 있는 일일까? 다 쓸 데 없는 짓이다. 내가 한 일은 태평양에 손바닥으로 파도를 일으키는 거다. 아니지 나비 그것도 아주 작은 나비가 사방이 벽으로 막힌 그런 곳에서 날갯짓 한 것과 같은 일이다. 전라도 말로 뻘짓거리다. 헛짓거리를 한 거다. 씨앗을 뿌려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얻는 것보다 더 오래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어디에도 남지 않는 일. 아, 그래. 아이들 가슴에 남아 있을 수 있겠다.
내가 다시 태어나 교사가 되어도 같은 헛짓거리를 할 거다. 아이 마음에 아주 작은 물결을 일으키기 위해 별 도움 안 되는 가벼운 말을 하며 살 게 분명하다.
“밥은 먹고 왔니?”
최관의 | 6학년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서울이수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살고 있다. 마음껏 어린 시절을 누리지 못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 『열일곱, 내 길을 간다』, 『열아홉, 이제 시작이야』(보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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