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나의 평화감수성]
부끄러운 과거와 마주할 용기
김경민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몇 해 전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글을 쓸 당시만 해도 생존자는 21명이었다. 잠시 잊고 지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니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단 9명뿐이라고 한다. 지난 5월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별세하면서, 생존자 숫자는 이제 한 자리가 되었다. 10, 9, 8, 7… 마치 시한폭탄에 장착된 타이머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생존자 한 분, 한 분이 세상을 떠나시고 마침내 마지막 한 분만 남게 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과연 어떤 기분일까?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둘이었는데 간밤 한 명이 세상을 떠나.” 김숨의 소설 『한 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가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여기 한 명이 더 살아 있다”고 나직이 중얼거린다. 그 역시 일본군 ‘위안부’였던 것이다. 집 앞 강가에서 놀던 소녀는 만주 위안소까지 끌려가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한 끝에 겨우 그곳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그의 몸은 망가진 상태이며, 호적상으로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가족들은 그의 일본군 ‘위안부’ 경험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그는 유령처럼 숨어 지내야만 했는데, 그러던 중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가 한 명밖에 남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비로소 자신도 피해자였음을 증언하겠다고 결심한다.
모든 생존자가 세상을 떠나 마침내 마지막 한 명의 생존자만 남게 되는 이 상황은 아득히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나 소설 속에서만 일어날 것 같은 허구의 것이 아니라 조금씩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피해자들이 직접 고통의 시간을 기억하고 증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을 부인했던 일본이 더 이상의 생존자가 없는 상황에서 보일 반응은 너무 뻔하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서둘러 무언가를 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되었다.
일본과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겨운데, 최근에는 싸워야 할 상대가 하나 더 늘었다. 피해자로서의 과거를 스스로 부정하고,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한 대한민국 정부가 바로 그 상대다. 104년 전,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만세운동을 벌였던 그 날, 그것도 유관순 기념관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과거 그 고통의 시간이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었다고 주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였던일본이 이제는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며, 그 새로운 파트너와 잘 지낼 것을 당부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인지 일본 외무성의 대변인인지 정체를 의심하게할 정도의 후안무치한 언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가해 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대신해 한국 정부가 배상하는 제3자 변제안이라는 아주 신선한(?) 방안을 제시하는가 하면, 끝내 정부의 안을 거부한 이들에 대해서는 최근 공탁 절차를 강행하기도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오히려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스스로를 꾸짖는 이 황당무계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해자인 일본이 보이는 부인의 반응은 차라리 이해가 된다. 그들의 태도를 수긍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편한 정서나 부정적인 심리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라는 점에서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해 행위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심리는 누구나 가질 법한, 예상 가능한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을 상대로 한 싸움은 오히려 대응하기 쉽다. 그런데 가해자의 입장에 동화되어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에 앞장서는 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맞서 싸워야 할지 황당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한국 국민으로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우리가 피해자인 상황에 대해서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니 우리의 가해행위에 대해서는 오죽하겠는가. 언제부턴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잊지 않고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꺼내 든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고등학교 무렵까지 베트남전쟁에 관해 배운 것이라고는 확산되는 공산화의 위기를 막아내는 데 일조하고, 미국의 군사 원조와 차관, 경제 지원 등을 토대로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으로 많은 베트남 국민이 희생되고 또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내게 대한민국이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과거를 알려준 것은 소설이었다.
러이의 가족은 다른 마을사람들과 함께 떤 땅 킴씨네 논 가운데로 끌려갔다. 끌려온 사람들 가운데 젊은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장정들은 모두 산으로 들어가고 마을에 남은 것은 여자와 아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노인들뿐이었다. (…) 뜨거운 태양이 중천에 솟아올랐을 때 군인들은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논 가운데 모여서라 했다. 군인들이 타고 온 트럭의 포장이 걷어올려지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상황을 직감했다. 트럭 위에 설치된 것은 기관총이었다.
(방현석,「랍스터를 먹는 시간」中)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은 베트민을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여성과 아이, 노인을 모아 놓고 총을 난사하는가 하면 시신을 소각하거나 불도저로 밀어 버리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민간인학살과 그로 인한 희생자의 존재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부인해서는 안 될 엄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당시 폭력의 피해자가 직접 그날의 고통을 증언하고 있으며, 그의 몸에는 과거의 그 상처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68년 베트남 꽝남성의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응우옌티탄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하라는 어려운 싸움을 시작했고, 마침내 지난 2월 대한민국 법원은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사실을 인정하며 우리 정부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적어도 우리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최소한의 양심이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반가웠다. 그러나 안도의 마음이 든 것도 잠시, 대한민국 정부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것이라는 뉴스가 전해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처럼, 이들의 싸움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 같아 마음은 다시 무거워졌다.
이미 오래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는 이 문제에 대해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각 나라에서 전쟁이 없어야 하는데 서로가 전쟁을 하는 사태에 과거에 당했던 분들께 너무나 미안하고, 우리들도 억울하게 당했지만, 우리들로 인해 베트남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니 한국 국민으로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 우리들은 이미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었지만, 앞으로 커 가는 후손들과 어린아이들에겐 절대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니, 각국 나라들도 전쟁 없는 나라가 되도록 열심히 힘을 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8월 15일을 과거 우리의 피해와 희생을 기억하고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은 날로만 기념할 것이 아니라, 김복동 할머니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들, 더 나아가 모든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고통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특히 우리로 인해 고통받은 이들과 우리가 가해자였던 과거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함께 갖는 것은 어떨까.
지난 호에서는 평화를 위해 부지런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여기에 더해 평화를 위해서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불의와 맞서 싸우는 용기뿐 아니라 나의 치부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 더 나아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 일어나고 있을 모든 폭력에 반대하며,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를 기꺼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용기. 이런 용기를 실천할 때 비로소 피해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더 당당해질 것이며, 보다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경민 | 국문학과 정치학 중 진로를 고민하다 문학으로는 사회의 모든 이야기를 살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국문학을 선택해, 지금까지 한 발은 문 학에 다른 한 발은 문학 바깥의 세상에 두고 있다. 『한국 소설의 인권의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계속 인권과 법, 국가폭력과 시민 등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경상국립대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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