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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5_6 주예지_틈 사이로 보는 건너편 세상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8. 17.

[한반도 평화교육 2] 

틈 사이로 보는 건너편 세상

주예지

 

틈만 나면
작은 틈만 나면
나는 태어날 거야.
쑥쑥 자랄 거야.
-『틈만 나면』, 이순옥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원의 벤치 틈 속으로 비집고 올라오는 싱그러운 풀들과, 척박한 모래와 돌 틈에서 낑낑대며 피어난 작은 꽃들과, 단단한 쇠붙이 맨홀 뚜껑에서 용감히 솟아오르는 풀잎들이, 그것들이 마치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

사이프러스에서 귀한 분이 오셨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한반도'라는 문구를 접했던 어렸을 적 기억이 꽤나 충격적이었던지 다른 분단국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늘 새롭다. 사이프러스는 그중에서도 더 생소한 나라이다. 이름조차 낯선 그곳에서 온 평화활동가라니. 게다가 초등학교 교사라니. 만나기 전부터 묘한 동지애가 꿈틀거렸다.

 


사이프러스는 지중해 동부에 있는 섬나라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이후에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 간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그리스계인 남사이프러스와 튀르키예계인 북사이프러스로 분리되었다. 키리아코스는 남북 사이프러스 학생들이 서로 만나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평화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imagine 프로젝트’를 통해 협력의 집에서 5년 동안 6,000여명이 넘는 남북 학생들이 만났다고 한다. 협력의 집은 우리로 따지면 일종의 판문점으로, 분단선에 버려진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남과 북 사이 중립구역에 위치한 남북 교류 장소이다. 분단의 아픔에서 만남과 협력의 장소로 전환된 곳으로서 상징적 의미가 큰 곳이다. 그곳에서 남북 사이프러스 아이들이 만나고 어울리며 스포츠, 공연, 예술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한다.

 


감탄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남과 북의 아이들이 만날 수 있다니. 분단된 국경을 (의지만 있다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곳에 모인 우리의 눈에 찰나의 부러움이 스쳤다. 완전한 자유로움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도 북녘땅을 밟을 수 있다면? 그곳의 어린이와 함께 어깨동무하며 서로를 만날 수 있다면? 계속해서 상상한다. 우리 아이들이 만나서 교실 안에 남녘과 북녘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린다면? 이런 상상을 할 때면 설레면서도 가슴 한 켠 그때 벌어질 혼란과 갈등에 다시금 막막해지곤 한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에 키리아코스는 ‘페다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들 각각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감으로써 서로의 인권을 어떻게 존중할 수 있는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어렵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론적인 교육학적인 답변에 마음속 고개를 갸웃했다.

 

떠올려보면, 런던한겨레학교(https://www.onekoreanschool.org)의 교장선생님이신 이향규 선생님께도 비슷한 질문을 드린 기억이 있다. 런던 한겨레학교는 한민족 2세의 교육을 위해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런던 뉴몰든 중심가에 설립된 한글학교이다. 그곳에는 북한 출신의 학부모님과 현지에서 태어난 학생들도 함께 있으며, 아이들에게 출신을 묻지 않고 남북을 구별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다.

 

아마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남과 북 아이들이 교류할 때 어떤 ‘특별하고,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것이고, 그에 대한 대책도 따로 있을 것이라고 내심 지레짐작을 했나 보다. 겪어보지 못한 장면에 대한 상상은 늘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 키리아코스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 본다. 결국 교육의 본질은 같을 것이다. 다른 민족 정체성에 의한 갈등이나 분열에 집중하기보다 더 큰 교육적 관점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우선시하는 것. 남과 북을 이분법적으로 나눠버리면 그 속에 갇혀 본질을 놓칠 수 있다. 교류가 불가능한 분단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지점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것도 잠시,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등장하고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모두가 탄식을 내뱉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한반도의 상황처럼 그곳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평화를 고무줄에 비유한 북아일랜드 활동가인 콜린의 말이 떠올랐다. 평화의 단계로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손을 놓아버리거나 중간에서 줄이 끊어지면 고무줄처럼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무척이나 맥빠지는 일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풀어나가며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는 키리아코스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공교육 제도 안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다면, 주말에 캠프 형식으로, 나아가 해외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살피고 있다고 한다. 키리아코스는 매섭게 되돌아온 고무줄을 다시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고. 그래도, 해야 한다고.

 

                                                                                          ◎

 

우리는 한참을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서로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경험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귀한 시간이었다. 지구상에 하나뿐인 분단된 나라의 외로움이 아니라, 아픔을 같이 공유하고 평화를 향한 의지를 함께 느끼는 연대감이었다.

 


주예지|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지내는 국어교사입니다. 살아있는 국어 수업을 꿈꾸지만 여전히 길을 못 찾고 주변을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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