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5_7 최관의_아이들이 기획하고 엮어가는 공연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8. 17.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아이들이 기획하고 엮어가는 공연

최관의

 

“공연 기획하는 일 해보고 싶은 사람?”
“그게 뭔데요?”
“연예기획사라고 들어봤지?”
“SM, JYP 이런 소속사요?”
“맞아요, 맞아. 샘이 요즘 가만히 보니까 공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우리 6학년에. 그 사람들이 공연할 자리를 만들어주는 거지.”
“기획하는 사람들이 공연하는 건 아니지요?”
“그렇지. 공연하기 좋도록 도와주는 거야. 공연할 장소 구하고 방송시설 정비하고 영상이나 음향 틀어주고, 관람하기 좋게 도와주는 일만 하면 돼. 영상 찍고 편집도.”
눈빛을 보니 관심있는 애들은 있는데 머뭇거린다.
“다들 학원이다 뭐다 바빠서 쉽지는 않을 건데 틈틈이 시간 되는 사람이 조금 더 하면 돼. 하다보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힘든 일도 생길 거야. 욕먹을 수도 있고. 무대에 나서는 것도 아니라 멋져보이는 일도 없을 거야. 무대에 오른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게 목적이니까.”
“보상 있어요?”
“보상 있지. 재능은 있는데, 공연은 하고 싶은데, 나서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을 찾아서 공연하게 도와주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보고 즐기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리고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겪는 게 많은 데 거기서 오는 깨달음이 크지. 그게 선물이야. 진로교육이 별 건가?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면서 느끼는 게 있거든. 그렇게 진로를 찾아가는 거지. 그게 보상이고 선물.”
머뭇거리면서 손을 든다. 모두 여섯 명이 신청했다. 잘 해야 서너 명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다. 이러다가 나중에 다른 반 아이들이 자기들도 기획일꾼하고 싶다고 하면 문제가 생기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름방학 전에 한 번 공연하고, 9월에 공연을 진행할 거야. 그 과정에서 너무 힘들면, 나랑 맞지 않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빠져도 되고. 빠지면 다른 반에서 몇 명 더 뽑을 생각이거든.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일단 해보자고. 해봐야 이 일이 맞는지 아닌지 알 테니까.”

공연 내용이 무엇이 될지는 나도 모른다. 담임이나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서툴고 세련되지 않더라도 앞에 나와서 해보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처음에는 춤이나 노래가 많겠지. 그러다 기획 일꾼들이 아이들마다 갖고 있는 재주와 취미 등을 알아내 섭외해서 다양한 내용이 올라오도록 노력하다보면 의미있는 자리가 될 거다. 달마다 한 번씩 공연을 하다보면 다른 학년 아이들도 관심을 보일 거고 그러면 판을 점점 키울 생각이다.

코로나19 이후 학교에서 공연무대가 사라졌다. 과거의 무대는 교사나 몇 사람이 기획하고 훈련시키다시피 해서 만드는 부담스런 무대이지만 이 무대는 교사는 뒤로 빠지고 아이들 스스로 엮고 만들어간다. 종류가 다르기에 출연내용도 다르고 아이들 가슴에 일으키는 파장도 다를 거다. 혼자 연습해서 올라오는 아이도 있을 거고 교실이나 학원 같은 데에서 배운 걸 올리기도 할 거다. 피아노, 기타, 클라리넷 같은 악기 연주, 태권도, 마술 같은 것.

한 달에 한 번 교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아이들끼리 준비하고 발표하는 자리. 담당교사 한 명만 뒤에서 아이들에게 조언해주고 예산이 필요할 때 지원해주면 된다. 그 틀만 만들어 놓고 퇴직하는 거다. 이어갈 만한 값어치가 없는 활동이라면 아무도 이어받지 않을 거고 의미있는 거라면 누군가 하겠지. 곧 사라지더라도 안 해본 거보다는 낫지 않을까?

기획 일꾼들이 점심시간에 모였다.
“언제 공연해요?”
“다음 주 월요일, 그러니까 여름 방학 전날인 24일에 하자.”
“너무 빨라요.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언제 준비해요. 2학기로 넘겨요.”
“부담없이 실험해보는 거야. 지금 해봐야 2학기에 그 경험을 살려서 좀더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서 공연할 건데요?”
“교실!”
관심이 많은지 질문이 쏟아진다.
“포스터도 만들어야 하고 신청서도 만들어서 접수를 해야 하는데 언제 해요?”
“마이크도 필요하잖아요. 몇 개나 준비해요?”
“음악은 누가 틀어요?”
“사회도 봐야하잖아요. 제가 할게요.”
점심시간에 어느 정도 이야기 나눈 다음 다시 수업 마치고 회의를 하기로 했다. 수업 마치고 학원에 가야 한다는 아이가 셋이나 나온다. 예상한 대로 아이들과 수업 마치고 활동하는 게 쉽지 않다.
“점심 시간에 어느 정도 회의를 했으니까 학원에 가야하는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끼리 역할을 나눌게. 대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되도록 회의 결과에 따라주어야 해. 앞으로도 이렇게 일을 하자고.”

그날 회의에서 마이크 빌리고 관리할 사람, 음악과 영상 틀어줄 사람, 신청서 만들고 접수받을 사람까지 아이들 스스로 정했다. 포스터와 신청서 그리고 접수함은 미술 시간에 우리반 아이들과 같이 만들고 포스터 붙이는 일은 일꾼들이 하기로 했다. 교실 관람석 의자배치 방법까지도. 회의 내용을 정리한 종이를 출력해서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이 일의 흐름을 잡아갈 수 있도록 회의 내용을 표로 만들어 정리하는 일은 담임인 내가 했다.

놀라울 정도로 아이들은 서로의 재주와 좋아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다. 누가 기계를 잘 다루는지, 그림을 잘 그리는지, 영상 촬영을 잘 할지. 공연기획이 아이들마다 갖고 있는 특징, 색깔을 더 또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만 해도 의미있는 교육활동이 될 거다.

미술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첫 공연에 대해 이야기했고 미술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기획일꾼 아닌 아이들은 홍보 포스터를, 그리고 일꾼들은 역할대로 컴퓨터에서 신청서 만들고 접수함 꾸미고 포스터에 들어갈 내용 가운데 빠진 게 있나 확인하고 준비물실에 가서 갖가지 필요한 것 챙겨오고 하느라 바쁘다. 자기들끼리 신나서 움직인다.

 


마침내 6학년 각 교실 복도에 포스터가 붙고 공연 신청서도 준비했다. 그날 수업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일곱 명이 공연 신청을 했다. 기대보다는 적었지만 처음이라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서 그러려니 했다. 각 담임이 바람을 잡도록하면 더 많이 신청하겠지만 아이들 스스로 하는 공연이라는 취지에서 벗어나는 순간 과거의 공연과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접었다. 교실이 너무 좁을 것 같아 도서관 사서선생님과 의논해서 도서관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고학년 아이들이 도서관과 조금이라도 친해지도록 만드는 기회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하는 날이다. 기획일꾼들은 점심시간 되자마자 도서관으로 갔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사서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이 오셔야겠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다. 공연히 도서관으로 잡았나 싶다. 도서관이 조금 더 아이들에게 가까운 곳으로 느끼는 기회가 되길 바랬는데 아이들이 너무 소란하면 9월 공연은 장소를 바꾸어야겠다. 서둘러 밥을 먹고 도서관으로 갔다. 일꾼들과 공연을 보러 온 아이들이 예상대로 소란하다.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스피커 소리가 너무 작아 관객인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리누르지 못한다. 인터넷은 끊기고 이어지길 반복하고 피아노 반주소리도 너무 작다. 준비한 마이크는 수업 때 교사가 쓰는 거라 있으나마나다. 그야말로 어수선하고 난장판이다. ‘에고, 실험공연이긴 하지만 사전에 미리 리허설을 안 한 게 실수구나. 출연자 없이 일꾼들만으로라도 리허설을 할 걸.’

음향담당인 진호의 침작함이 대단하다. 출연자는 무대에 서서 기다리지 인터넷이 안 되어서 관객은 시끌시끌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진행하는 모습에서 순발력과 배짱이 보인다. 일꾼을 제대로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촬영담당도 어깨가 아플 텐데 참고 잘 한다.

겨우 반주를 틀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하자 반주소리가 작은데도 관객들이 조용해진다. 거기다가 그 작은 반주에 맞춰 손뼉까지 쳐준다. 사춘기 장난꾸러기들로만 여겼는데 관람 태도를 보니 감동이다. 기대 이상이다.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은 두 사람이 즉석으로 공연 무대에 섰지만 기획일꾼들은 잘 진행했다. 교장, 교감선생님과 우리 6학년 선생님들도 함께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돋구었다.

공연이 끝난 뒤 공연 일꾼들은 빌려온 마이크, 노트북, 전자피아노 그리고 포스터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빌려온 건 다시 손갈 필요 없도록 마무리한 뒤 하교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기뻤다. 인터넷과 음향만 잘 정비하면 다음 공연은 더 훌륭하게 엮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 뒤 6학년 몇 명이 내게 찾아왔다. 다음 공연이 언제냐고 물었다. 미리 준비했다가 그때는 꼭 출연하겠단다.

6학년 115명 가운데 약 50여 명의 아이들이 관람했다. 다음 공연이 기대된다. 9월 공연은 약 3주 전부터 준비할 거다. 공연자도 늘고 내용도 다양해지겠지. 중요한 건 아이들 스스로 엮어가는 공연이라는 거다. 첫 공연이라 내가 방향 잡아주느라 잔소리를 했지만 앞으로는 최대한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갈 거다. 교사는 뒤로 빠지고 아이들이 전면에 나서는 공연을 만드는 게 목표다. 공연으로 끝나지 않고 자율동아리, 자율 스포츠클럽 등으로 번지면 좋겠다. 교사와 아이들 모두 스스로 뭔가 엮고 가꾸어가는 힘을 기르는 기운이 퍼지도록 하는 게 내 속셈이다. 정년퇴직을 하며 아이들과 후배 샘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선물이다.


최관의 | 6학년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서울이수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살고 있다. 마음껏 어린 시절을 누리지 못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 『열일곱, 내 길을 간다』, 『열아홉, 이제 시작이야』(보리)를 썼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