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교육]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사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채창수
역사교육에서 평화교육의 위치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란 시민이 공동체의 중요한 쟁점에 대해 활발하게 의사소통하고 결정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이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한반도 평화 문제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어떠한가? 언론은 북한과 중국을 악마화하는 대단히 편향된 정보만을 제공하고 심지어 일부 정치인은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까지 한다. 시민들은 전쟁 위기에 대해 무관심한 대범함을 갖고 있다.
역사교육계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필자도 속한 천 명이 훌쩍 넘는 역사교사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오픈 단톡방에서 작년에 나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이슈는 역사과 교육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하려는 정권의 움직임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이었다. ‘자유 들어간다고 뭐 큰 문제인가 그거 양보하고 역사과의 다른 요구사항들을 교육과정에 관철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엄지척’이 몇 개 달리면서 피드가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현 정부의 ‘자유’는 한국전쟁 당시 공산독재에 맞서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빨갱이(비국민)로 몰아 학살하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정부가 ‘자유’를 강하게 자주 외칠수록 시민들의 자유는 축소되는 기괴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단톡방에서 북핵이나 북한 문제와 관련해 언급된 내용들을 생각해보면 많은 역사교사들이 한반도 평화 문제와 분단 체제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역사교육학계에는 평화를 중심에 둔 시론적인 논문이 몇 편 있고 전국역사교사모임의 회보에도 평화를 주제로 한 수업 사례가 꾸준히 실리고 있다. 기존의 연구나 수업 실천에서 주로 이루어졌던 고민은 ‘전쟁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남북대화의 역사, 한국전쟁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국가 폭력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전쟁을 가르칠 때 전선의 이동과 무용담으로 전쟁을 얘기하지 말고, 다양한 주체들이 전쟁을 어떻게 겪었는지를 보여주고, 전쟁이 끼친 고통과 영향을 드러내어 반전 평화 감수성을 키우자는 내용이 담겼다. 소중한 고민과 실천이지만 분단 문제가 우리 삶에 끼쳐온 엄청난 영향과 지금의 전쟁 위기를 생각하면 역사교육계의 실천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은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이미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지 오래되었기에 청소년이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의 중요 쟁점에 대한 교양과 비판의식을 키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는 이제 중·고등학교 시절뿐이다. 북한의 핵능력은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고 정부는 이에 맞서 살벌한 말폭탄을 수시로 던지고 있다. 미국은 전략자산을 수시로 한반도에 전개하여 북한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과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는 파탄 직전 상태이고 일본과는 유래 없는 군사적 협력이 이루어지는 지금의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위기 상황이다. 그런 고민을 한참 하다가 딱딱한 역사 개념과 세부적인 지식들이 가득한 역사교과서를 가르치다보면 한숨이 툭 터져 나올 때가 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우리는 지금 뭘 가르치고 있는 걸까?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
두 달 전쯤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요한 갈퉁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유명한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의 개념을 정립한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전자는 전쟁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이고 후자는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비롯한 우리 삶에 내재한 다양한 폭력들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전쟁이나 물리적 폭력이 없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위태로운 것이고 ‘적극적 평화’의 정착을 위한 노력이 본질적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이 둘을 구분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화교육을 고민하는 분들은 이러한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반영하여 다양한 영역들에서 연구와 실천을 진행하고 있다. 평화란 우리가 주변과 맺는 다양한 관계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기후위기, 차별, 평등의 문제 등 어찌 보면 민주시민교육에서 다루는 모든 진보적 의제들이 평화교육과 연관되어 있다.
필자는 ‘적극적 평화’를 실천하는 것이 우리를 둘러싼 관계들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만드는 길이라는 것은 100% 동의한다. 하지만 ‘소극적’, ‘적극적’이라는 표현이 지금 필요한 평화의 의미와 실천 지점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적극적 평화’가 어느 정도 구현된 사회라면 물리적 폭력이 없는 ‘소극적 평화’는 당연히 지켜지리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순위나 중요성의 문제로 혼돈하게 되면 지금 우리가 집중할 평화의 문제에 대해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분단 체제가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왜곡된 구조와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발생할 처참한 피해를 상상하면 당장 전쟁 위기를 막으려는 노력은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긴급하고 절박한 평화’의 문제이다. 그래서 필자는 평화교육을 강의할 기회가 있으면 ‘소극적 평화’를 ‘긴급한 평화’로 ‘적극적 평화’를 ‘근본적 평화’로 이해하자고 얘기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평화의 개념은 지금 이 시점 이 땅에서 위협받는 평화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지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정학자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은 한반도처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에 위치한 작은 나라들에 대해 그 나라들의 운명은 ‘기껏해야 위태로울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잘하면 위태로운 상태이고 보통 전쟁이 발생하는 지역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전쟁과 이후 한반도가 걸어온 살얼음판 같은 길, 그리고 지금 현재 상황은 우리에게 긴급하고 절박한 평화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다시 갈퉁 식의 표현을 사용하면 ‘소극적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적극적으로 평화교육을 실천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역사수업에서는 어떤 내용을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까? 수업 방법의 문제는 일단 제외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사 내용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긴급한 평화’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사 교육과정
한반도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사 교육과정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지정학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에서 지정학을 거론할 경우 ‘숙명론’, ‘식민사관’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게 될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고 강만길 교수도 저서에서 한반도의 식민지화와 분단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정학적 위상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고 그 위치는 시대의 변화와 구성원들의 대응에 따라 불리한 위치가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을 역사학에서 적극 수용하게 되면 ‘긴급한 평화’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사 교육과정을 전근대사까지도 확장할 수 있다. 즉, 분단 문제는 현대사 영역이라는 제한을 뛰어넘을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개된 수많은 전쟁들을 나열하면 한나라의 고조선 침략, 수·당의 고구려 침략, 거란·몽골의 고려 침략, 임진왜란, 후금(청)의 조선 침략, 청일전쟁, 한국전쟁 등등이다. 위에 언급한 전쟁들을 유형화해보면 중국이 어떤 경우에 한반도에 군사력을 전개하는지 알 수 있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차지하고 중국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했기 때문에 공격을 당한 경우이고, 북방민족들의 한반도 침략은 중국(중원)을 정복하고 싶은데 전선이 2개가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한반도를 먼저 친 경우이다. 임진왜란과 청일전쟁, 한국전쟁은 해양세력이 한반도를 기점으로 삼아서 중국을 위협하자 군사적으로 개입한 경우이다. 이 세 가지 경우의 공통점은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토 야욕 때문에 침략한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즉, 전근대 전쟁사 학습을 통해 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때만 중국이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재의 한국이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이나 갈등을 피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외교를 전개해야 할지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고, 현재 한국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성찰 해볼 수 있다.
현재의 분단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지점인 한반도에서 두 세력의 힘이 엇비슷한 상황 때문에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단의 현실화나 분단의 위험이 우리 역사에서 처음 거론됐던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때 명과 일본의 휴전 협상에서 조선의 8도 중에서 4도를 명나라와 일본이 분할하는 방안을 협상했던 적이 있고, 러일 전쟁 직전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39도선 기준의 한반도 분할을 논의한 적이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학습하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 지점이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성격상 분단 상황이 우연이 아니라 언제나 현실화 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의 특징과 관련하여 정치 외교사를 공부하면 한반도의 생존에 ‘중립’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중립이 논의되거나 실천되었던 시기들을 적극적으로 한국사 학습에서 다뤄보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는 수업 시간에 거의 언급되지 않고 넘어가지만 고구려 장수왕 때 중국 남조와 북조의 대립 상황에서 장수왕의 중립 정책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들이 다수 남아있다. 또한 고려의 거란전쟁 당시 서희의 활약, 조선 시대 광해군의 실리중립 외교, 그리고 1885년 조·러 밀약과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으로 청·일·영·러 4개의 강대국이 각축하는 상황에서 유길준과 독일인 부들러 등이 제기했던 중립화론 역시 한국사를 통시적으로 볼 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중립’의 중요성을 학생들이 다시금 고민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와 함께 한반도 긴장 완화와 통일을 위해 중립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또한 중립 실현의 어려움과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 등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토의해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사교육에서 핵심적이다. 여기서 다룰 수 있는 주제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1945년~1948년 시기에 통일 국가 수립에 왜 실패했는가? 당시 국제 정세와 남북한 정치 세력의 노력과 한계, 언론의 문제 등등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다. 둘째는 비슷한 시기에 분단 위험을 극복했거나 강대국에 종속당할 위험을 주체적 노력으로 극복한 오스트리아와 핀란드의 사례를 한국 사례와 비교하여 수업화하면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심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중립의 의미와 정치 세력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셋째는 한국전쟁에 대한 수업이다. 현재의 한국사회를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 한국전쟁임을 생각하면 이 부분을 한국사 수업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할애하고 전쟁에 대한 구조적 이해, 전쟁 속 사람들의 모습, 국가폭력의 문제, 반전 평화 수업 등 다양한 형태의 시도가 가능하다. 넷째는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에서 독재 권력이나 보수 권력 집단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분단 상황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자세히 학습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무엇이 가로막아 왔는지 분단 체제의 극복이 왜 절실한지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는 북핵 문제의 과거와 현재를 적극적으로 수업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운 주제이지만 북핵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으면 북한을 악마화하는 수많은 보수 담론들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핵에 대한 북한의 집착이 한국전쟁의 경험에서 시작되었고, 핵 개발 자체는 잘못이지만 오히려 북한이 안전보장과 핵개발 포기의 맞교환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일관된 태도를 취해 왔었다는 사실, 미국이 이를 거부하거나 오히려 이용한 측면이 있고 한국과 미국 모두 진보와 보수의 정권 교체에 따라 일관된 외교정책을 유지하지 못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적어도 한반도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사라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수준에서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북핵 문제의 전개 과정에서 실제 전쟁 직전 상황까지 갔었음을 배움으로써 학생들이 한반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수업과 북핵 문제에 대한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이 얻어야 할 가장 큰 교훈은 어떤 경우에도 전쟁만은 선택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은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는 현재의 ‘긴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역사 시간에 이 문제를 수업화 하거나 교재화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서술되었다. 이러한 수업 실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역사 수업 시간에는 중요한 문제를 더 자세히 가르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 평화의 문제라는 것에 대한 역사 교사들의 인식 또는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ㅣ사진 출처ㅣ
역대정부 교육과정별 ‘민주주의’ 서술 표현 변화
https://www.yna.co.kr/view/GYH20221109000600044?section=search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촉구 기자회견
https://www.peoplepower21.org/peace/1945196
38선에서 만난 미군과 소련군
https://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pn=0&num=119392
채창수 | 전주 완산고등학교 수석교사. 교사와 연구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평화를 일구는 역사 수업을 실천하고 있다. 매년 ‘한반도 평화’라는 큰 틀에서 새로운 주제를 연구하고 개발해 전북 교사들에게 수업을 공개하면서 전북평화통일교육연구회에 가입하도록 갖은 방법으로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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