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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8_3 이경수_북녘 노동자 이야기

by 어린이어깨동무 2024. 5. 14.

[평화의 시선으로 보는 북녘] 

북녘 노동자 이야기

 

이경수

 

북녘의 노동자는 공장이나 기업소에 소속되어 일한다. 기업의 규모와 소속에 따라 크게 중앙기업과 지방기업으로 구분된다. 특급 및 1~3급 기업은 노동자 규모 500명 이상의 중앙기업이고, 4~7급 기업은 지방기업으로 분류된다. 광업, 기계 화학 등 중공업 부문 기업은 대다수 중앙기업이며, 식료 및 경공업 부문 공장은 대다수 지방기업이다. 부문별 공장・기업소를 여러 개 묶어 연합기업소를 구성하기도 한다.

 

북한의 생산체계는 아래부터 작업반→직장→분공장→공장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분공장 아래에는 여러 개의 직장이 있고 직장은 다시 4~5개의 작업반으로 나뉜다. 보통 분공장은 200~300명, 작업반은 25~30명 내외로 구성된다. 공장의 주력 상품을 생산하는 외에도 군수품 생산 직장을 두는 경우가 있으며,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자투리 폐기물, 폐설물을 신발, 모자, 가방 등 ‘8.3인민소비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8.3작업반’도 둔다. 일부 노동자는 ‘8.3노동자’로 일하기도 한다. ‘8.3노동자’는 소속 기업의 승인을 얻어 일정한 금액을 납부하는 대신 출근하지 않고 사적 경제활동을 벌이는 이들을 일컫는다.

 

기업=실제적 경영권 가진 경제단위

 

2013년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 정식화된 이래 북의 기업은 각자가 ‘실제적 경영권’을 갖고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주요 품목에 대해서만 국가 및 지방계획을 시달받고 나머지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계획-생산-판매를 책임져 수익을 올려야 한다. 정해진 국가납부액을 제외하면 모두 기업에 유보되어 생산을 위한 투자를 확대할 수도 있고 노동자 시설을 확충하는 등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소속 기관, 기업소에 따라 개별 노동자의 일상 생활은 더욱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단천발전소 1단계 물길굴 공사를 진행 중인 노동자들. 사진출처 : 통일뉴스 갈무리

 

북측 「노동법」에 따르면 북녘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이며, 노동강도와 환경에 따라 1-2시간 단축된 노동시간을 적용하기도 한다. 자녀가 셋 이상인 여성의 노동시간은 6시간이다. 한 주에 하루 쉬므로 주 48시간 노동한다.

 

아침에 출근해 작업반별로 학습을 진행한 후 8~12시 오전 작업을 진행하고, 12~2시 점심식사와 오침(낮잠)시간을 가진 이후 2~6시 오후 작업을 한다. 점심은 대개 도시락을 먹는다고 한다. 오후 작업이 끝나면 그날 작업성과를 평가하는 작업총화를 진행하고 주1회 생활총화, 기술학습, 사상학습, 강연회 등이 진행된다. 모든 노동자는 조선직업총동맹(직맹)에 가입해 조직생활을 하며, 노동자 중 일부 당원은 공장당위원회에 속해 조직생활을 한다.

 

직종별 차등 임금, 모범 노동자는 상금과 장려금, 정・휴양으로 보상

 

해마다 일요일을 포함하여 14일의 정기휴가를 받으며, 중노동 이상이면 휴가를 더 받아 최대 휴가 기간은 35일이다. 자녀를 출산한 여성은 산전 60일, 산후 180일의 휴가를 받는다. 휴가를 반납하고 일할 경우 임금을 가산해 받으며, 법정휴가 외에 개인 사정에 따라 상사의 허락을 받아 쉬는 경우에는 쉬는 날만큼 임금을 제한다. 여름에 몰아서 휴가를 갖지는 않으며, 주로 관혼상제, 김장 등에 활용된다. 직장이나 조직에서 단체로 견학을 가거나 가까운 지역의 유원지나 명승지를 찾기도 한다. 

 

법정휴가 외에 포상휴가 성격으로 일정 기간 휴양소를 이용하도록 하는 ‘정・휴양제’가 있다. 직장마다 휴양권 및 정양권이 배정되나 수가 부족해 노력영웅이나 모범근로자, 열성당원 등에 우선 배정된다. 5일, 15일 등으로 구분된 휴양권을 직맹에서 받아 인원을 배정하며, 휴양권을 배정받은 노동자는 정기휴가는 갈 수 없다. 2020년 개장한 양덕온천문화휴양지도 이러한 휴양지에 해당한다. 평안남도 양덕군에 소재한 이 휴양지는 실내 및 야외 온천장, 휴양호동과 요양호동을 갖추고 있으며, 스키장과 승마장 등 체육시설과 영화관, 오락실 등을 갖춘 곳이다. 이외에도 대동강・묘향산・고방산・김정숙휴양소 등 전국에 100여 개 넘는 휴양소가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휴양소 관리와 운영, 건설은 내각 노동성 휴양관리국에서 맡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갈무리

 

노동자들은 매달 생활비(우리식 임금)을 받으며, 직종과 급수에 따라 세분화해 임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한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하 7.1조치)1) 이후 알려진 ‘노동자생활기준표’2) 에 따르면 석탄공업, 광업, 지질탐사, 농업, 임업, 철도운수, 양정, 상업, 급양 등 28개 부문, 각 부문별로 4~27개로 직종을 구분해 전체 337개로 부문과 직종을 세분화한다. 직종별 임금이 2배 이상 차이를 보일 정도로 차등화된 임금 체계를 둔다. 전체적으로 어렵고 힘든 노동일수록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며, 서비스업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된다. 가장 월급을 많이 받는 곳은 탄광으로 내각의 상(장관)이나 교수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는다. 일이 고된 만큼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또한 급수별로도 임금에 차이를 둔다. 중학교 졸업생에는 ‘기능’ 급수가 매겨지며, 대학 졸업생은 ‘기사’ 급수를 준다. 보통 1~7급으로 급수를 세분화하며 2~3년에 한 번씩 급수 향상을 위한 시험을 치른다. 의사, 설계원, 은행원 등 전문직은 물론 이발사까지도 1급부터 7급까지 급수가 매겨지며, 급수별로 임금이 달라진다.

 

1)7.1 경제관리개선조치란 북한이 2002년 7월 1일 발표한 가격 및 임금현실화, 공장·기업소의 경영자율성 확대, 근로자에 대한 물질적 인센티브 강화 등의 조치를 의미한다. 이 조치는 기존의 계획경제 틀 내에서 시장경제 기능을 일부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출처 : 국립통일교육원)
2)중앙일보. 2003.6.26. “처음 확인된 360개 직종 북한노동자 임금.”

 

기본임금 외에 근속연한, 노동조건, 기술자격을 고려하여 추가되는 가급금과 국가가 설정한 지표를 달성한 개인이나 집단에 지급되는 상금과 생산계획 초과달성, 자재 합리적 이용 등을 유도하는 포상금 성격의 장려금이 추가된다. 임금의 1%를 사회보험료로 부담하며 시기에 따라 헌금과 기금 등도 임금에서 제한다.

 

올해 초 임금 10배 인상, ‘쌀 1kg=노동자 1달 노임’은 옛말

 

원칙적으로 노동자들은 쌀과 기초식품 등 생활필수품을 국가에서 배급받아 생활한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공무원이나 군인, 일부 기업 노동자들만 배급받을 수 있었다. 1990년대 경제위기를 겪으며 북에서는 식량확보 방식이 다원화되었다. 당정 간부와 군인 등 일부 계층은 국가에서 국정가격으로 식량을 공급받고, 노동자 중 일부는 소속 기업이 자체적인 사업과 외화벌이 등을 진행해 시장보다 싼 가격으로 식량을 공급받고, 개인은 국가 또는 기업소 공급 없이 전적으로 시장에서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

 

쌀의 경우 시장가격은 1kg 당 4,000~5,000원이며, 국정가격은 46원이었다. 한 달 임금을 받아 쌀 1kg 사면 끝이라는 얘기는 여기서 나왔다. 배급 받는 계층은 식량을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으며, 때로는 배급쌀 중 일부를 시장에서 판매해 옥수수와 감자 등 ‘눅은(저렴한)’ 곡식을 구매해 식량 양을 늘리기도 한다. 일부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당정 간부나 군대 등을 제외하면 일반 노동자에 있어서는 소속 공장・기업소 수입에 따라 배급 유무 또는 배급량의 차이가 발생한다. 기업소의 운영에 따라 임금도 크게 달라진다. 국영기업에서 자체 계획을 세워 상품을 생산해 별도 자금을 마련하는 경우 12~15만원까지 임금을 인상하거나 임금을 30~50만원 지급하고 쌀과 식용유, 술, 고기 등을 현물 지급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2024년 초 북은 임금 인상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진다.3)  평균적으로 10배 가까이 임금이 올랐다. 이에 앞서 2003년 1kg 당 46원이던 쌀 가격을 2,000원으로 45배 인상한 바 있으며 양곡판매소를 설립해 시장보다 조금 낮은 가격으로 쌀과 옥수수 등을 판매하는 조치를 취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양곡판매소에서 식량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대당 가족 수에 따라 5~10일에 해당하는 양을 나누어 구매할 수 있다. 기관, 기업소 공급분과 양곡판매소 구매분을 합해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뒤이어 임금이 대폭 인상되면서 필요 식량 중 일부는 배급받고, 일부는 시장보다 낮은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3)RFA, 2024.01.09 “북, 노동자 월급·식량배급가격 시범적 동시인상,”; 2024.01.11. “[지금 북한은] 북 공장 노동자 월급 40배 인상, 왜?”;  아시아프레스, 2024.01.11 “<북한내부> 파격적인, 10배 넘는 '임금 인상' (1)~(3)


북녘 노동자 임금

(단위 : 원)

  2023년 3월 2023년 12월
공무원 5,000 35,000-50,000
교원 4,000-4,500 38,000-50,000
공장 노동자 1,500-2,500 35,000
연로보장 연금   25,000

출처: 아시아프레스


쌀가격을 현실화하고 이에 맞게 임금을 현실화한 것은 7.1 조치와 유사하다. 당시 국정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쌀가격을 250배 인상하고 기초식품, 비누 등 상품 가격과 공공요금을 평균 25배 인상했으며, 임금을 평균 18배 인상했다. 2002년 당시와 다른 점은 올해에는 기관, 기업소 공급 외에 양곡판매소 구매가 가능해 식량 확보처가 다양화되었다는 점이다. 시장 가격 안정화를 위한 중간장치를 두는 셈이며, 동시에 국가와 시장이 병렬하는 가운데 주민들을 국가 공급으로 유인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또한 7.1조치 시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임금과 가격이 인상된 데 반해 현재 임금 및 가격 조정은 시차를 두고 점진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정책의 연착륙(soft-landing)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식량 확보가 다원화된 상황이 안정되더라도 공장, 기업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어 노동자들에게 임금이 지급되고, 식량 공급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노동자들의 생활이 안정화될 수 있다. 1990년대를 거치며 10%로 급감했다고 하는 북의 공장 가동률은 다소 상승해 40% 내외인 것으로 알려진다.4)  올해 초 북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북측의 국내총생산액은 2020년 대비 1.4배 늘어났다. 특히 동기 대비 삼화철 3.5배, 선철 2.7배, 공작기계 5.1배 등 철강, 기계 부문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5)  북이 밝힌 수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기는 힘드나 코로나19 상황과 이에 따른 2년 가까운 국경 봉쇄를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수치다. 시장에 ‘기생’해서 운영된다던 북측 경제가 정상화에 접어든 것일까. 향후 추이를 관찰해야 하겠으나 분명한 것은 지금 북측의 공장, 기업소 상황에도, 북측 노동자들의 생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4)중앙일보, 2018.10.11. “월급 4000원인데, 담배 한 보루 5000원? 北 임금 미스터리”

5)노동신문, 2023.12.3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

 

 

┃참고문헌┃

* 박영자 외. 2016. 『북한 기업의 운영실태 및 지배구조』. 통일연구원. 

* 송현욱. 2021. “북한 기업의 노동력관리운용제도”. 『홍익법학』 제22권 제2호. 
* 오상봉 외. 2018. 『북한 노동시장의 현황』. 한국노동연구원.

 

이경수┃2000년대 남북간 교류와 협력 실험이 활발하던 시기를 <민족21> 기자로 남북관계 현장에서 보냈다. 2010년대 이후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이제 기자가 아닌 연구자로 평양에 갈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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