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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9_5 김경민_공순이와 맘충이 아닌 송효순과 김지영으로...

by 어린이어깨동무 2024. 8. 19.

[문학으로 읽는 나의 평화감수성] 

공순이와 맘충이 아닌
송효순과 김지영으로...

 

김경민

 

 

매일 십 리가 넘는 길을 걸어가야 하지만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이야기책과 시를 읽는 순간 행복을 느낀다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공부를 곧잘 했지만 부잣집 아이에게 우등상을 뺏겨야 했으며,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좋아하는 시를 읽는 대신 부잣집 논에 떨어진 이삭을 주우러 다녀야 했다. 결국 열세 살이 되던 해에는 병환 중인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를 대신해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청계천의 방직공장에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언니는 내가 나이가 아직 어려서 내 나이로는 공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태성 큰오빠네 조카 이름으로 이력서를 쓰자고 하였다. 나는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 게다가 남의 이름으로 몰래 들어가야 한다니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어쩐담. 왠지 무섭기도 하였다. 언니는 남의 이름으로 공장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많으니 괜찮다고 나를 달랬다.
왜 가난하게 태어나 너무나 어려 공장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나이에 공장에 들어가야만 되는가. 남들은 공부를 하는 나인데. 전에 내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하였을 때 오빠는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드리고 살아가라고 답장이 왔었다. (송효순, <서울로 가는 길>中)

 

이렇게 시작된 열세 살 소녀의 삶은 가족을 위한 삶이 되었다. 이 소녀는 쏟아지는 잠을 참다못해 잠 깨는 약까지 먹어 가면서 밤낮없이 일했지만 손에 쥐는 돈은 터무니없이 적었고, 그마저도 아버지의 병원비와 가족의 생활비, 남자 형제의 학비와 결혼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남자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한 덕분에 그들은 모두 의사가 되고 경찰서장이 되어 승승장구하는 동안 이 소녀는 간신히 야간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던 가부장제의 사고는 직장에서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 소녀가 공장에 다녔던 1970-80년대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남성노동자의 40%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고, 여성노동자가 담당하는 업무 또한 남성노동자의 보조 역할이나 비전문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노동이 전부였다. 이러한 차별은 이른바 민주노조라 불리던 집단 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민주적 가치를 앞세우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던 민주노조원들에게도 ‘여성노동자의 인권’은 예외적이고 낯선 것이었다. 심지어 여성노동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노조가 나아가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여성노동자 수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임원은 언제나 남성의 차지였고, 여성노동자는 노조 내에서도 희생과 양보를 요구받았다.

 

공순이의 딸이 맘충이 되는 순간

 

이렇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여공 혹은 공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죽어라 일했던 이 소녀는 여자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결혼을 하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만 불리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1982년 무렵 딸을 출산하는데, 그의 딸 지영 또한 집에서는 남동생에게 양보하고, 학교에서는 남학생을 우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라난다. 남녀의 교육 기회가 ‘비교적’ 평등한 시대를 살았던 지영은 남녀의 일자리가 구분되어 있던 부모세대와 달리 같은 일자리를 두고 남성과 경쟁해야 했는데, 경쟁의 과정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 결과 또한 공정하지 않았다. 평등한 교육 기회와 달리 똑똑한 여자를 부담스러운 존재로 보는 시선은 여전했고, 채용 기회는 남성에게 유리했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취업 경쟁에서 힘들게 살아남더라도 여성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불평등은 끝나지 않았다. 여성의 노동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은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회사는 출산과 육아 등의 이유로 여성노동자를 ‘오래 못 버틸’ 직원으로 단정하고 남성노동자와의 차별을 당연시한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가 되었다. 그래도 남성노동자 임금의 42%만 받던 부모세대에 비해 ‘무려 63%씩’이나 받게 되었으니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과거 지영의 어머니 세대가 결혼생활과 일을 병행할 수 없는 차별적 상황에 놓였던 것과 달리 지영 세대의 여성노동자들은 ‘적어도’ 노동자와 어머니라는 역할을 함께 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달라진 상황이 과연 여성들에게 더 민주적이고 진보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영은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자신이 없어 출산을 망설이는데, 그런 지영과는 달리 그의 남편은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라며 선심 쓰듯 말한다. 그에게 여성의 직장생활은 언제든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었고, 여성에게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가정과 육아였기 때문이다. 결국 출산을 앞둔 지영은 퇴사를 선택한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그 한 사람은 ‘당연히’ 여성이었던 것이다. 모든 여성은 잠재적인 어머니이며,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필요하고, 따라서 여성이 육아를 하고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좋다는 ‘일방적인’ 인식이 여전히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회가 가하는 무언의 압박에 의해 지영은 성취감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던 직장을 그만둔다. 결코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는 ‘맘충’이 되었다. 자신의 꿈도, 일도, 인생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운 결과 그는 벌레가 된 것이다.

 

직장, 결혼, 육아라는 철인3종경기

 

지영의 친구 은정은 출산과 동시에 일을 포기한 지영과는 달리 세상과 단절된 ‘무식한 아이 엄마’로만 남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직장생활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갑작스러운 아이의 사고와 함께 그의 이런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불명열로 뇌 일부가 손상을 입긴 했으나 이렇게 의식이 없을 정도는 아니라고,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은정은 믿을 수가 없었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던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원망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곳에 아이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집에 데리고 있었더라면, 내가 일을 쉬었더라면, 하고 수없이 똑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는 휴직 신청을 했다. 그러나 부부 두 사람이 마냥 일을 쉬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남편은 회사로 복귀했고 시가에서 출퇴근을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병실에 붙어 간병을 하는 사이사이, 은정은 보호자 침상에 누워 잠을 잤다. (…) 그러다 간호사가 오거나 다른 환자들의 간병인이 와서 깨어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누구와 눈이 마주쳐도 자신이 몹시 한심하고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저러고 있는데 엄마는 침을 흘리며 잠을 자네,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윤이형, <붕대감기>中)

 

 

지영에게 향하는 ‘맘충’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 은정은 또 다른 이유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그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인 아이의 사고에 대해 자책하고 괴로워해야 하는 것은 왜 언제나 일하는 엄마의 몫일까? 회사 일을 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왜 아빠에게는 묻지 않는 것일까? 다친 아이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사람 또한 ‘당연히’ 엄마인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은정과 지영이 결혼을 선택하고, 출산과 육아라는 힘든 과제를 만나 외롭게 싸우고 있을 때, 그들의 친구 하민은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엄마, 나 있잖아. 어렸을 땐 누구나 다 엄마가 되고 다 그렇게 하는 건줄 알았거든. 그런데 점점 엄마처럼 할 자신이 없어졌어. 내 친구 중에 일찍 결혼해서 벌써 아이 낳은 애들 있잖아. 유진이. 미리. 다 너무 힘들어해. 삶의 질이 확 떨어진다는 거야. (…)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게 심리적으로 부대끼나 봐. 아무래도 애 낳는 건 여자니까.”
모든 일에 유능하고 씩씩한 엄마 , 그래서 넘사벽이었다. 하민은 엄마처럼 청소와 정리정돈을 잘할 수 없고 무엇보다 자식 일에 내 시간을 그렇게 무한정 들일 자신이 없다. 직장 다니면서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는 건 철인3종경기다. (조선희, <그리고 봄>中)

 

 

 

 

직장생활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자신의 엄마를 보며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하민은 ‘일반적인’ 결혼과 출산이 아닌 동성과의 결혼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을 한 하민 또한 은정이나 지영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들보다 더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와 직장생활과 관련해 지영과 은정, 하민은 각기 다른 선택을 했지만, 그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왜 우리 사회는 일하는 여성, 특히 결혼과 출산, 육아를 두고 고민하는 일하는 여성이 내린 모든 선택에 대해 더 엄격하고 냉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열세 살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여공이 되었던 소녀와 그 소녀의 딸 지영, 그리고 그의 친구 은정과 하민의 이야기는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 신순애의 <열세 살 여공의 삶>,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윤이형의 <붕대 감기>, 조선희의 <그리고 봄>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 각각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지만 모두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바로, 일하는 여성의 삶. 특히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세 편의 소설(<82년생 김지영>, <붕대 감기>, <그리고 봄>)은 작가의 상상으로 지어진 가상의 이야기지만 소설의 인물들과 같은 또래인 나로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마냥 허구로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포함해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주변의 많은 이들이 겪는 불평등한 상황이 더 여실히 담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정도다. 소설보다 더 적나라한 현실을 살아가는 수많은 지영과 은정은 언제쯤 일과 가정을 두고 고민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과 가정에서 ‘당연하게’ 부과되는 수많은 책임과 희생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길, 더 이상 일 하는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가 고행의 철인3종경기가 아니길, 그 수많은 ‘당연함’을 앞두고 있는 이로서 간절히 소망해본다.

 

김경민 | 국문학과 정치학 중 진로를 고민하다 문학으로는 사회의 모든 이야기를 살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국문학을 선택해, 지금까지 한 발은 문학에 다른 한 발은 문학 바깥의 세상에 두고 있다. 『한국 소설의 인권의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계속 인권과 법, 국가폭력과 시민 등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경상국립대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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