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팔레스타인, 전쟁과 어린이
미니
저는 평화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팔레스타인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페이스북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기 위한 집회에 참석한 제 사진을 팔레스타인 친구들에게 보내면 크게 기뻐하며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제가 사진이라도 보내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던 어느 날, 팔레스타인 사람 W가 제게 음성 파일을 하나 보냈습니다. ‘뭐지?’ 싶어 틀어보니 막내 아들 4살 이브라힘이 ‘땡큐 미니’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심장이 쿵! 하며 눈물이 떨어졌고, 그 ‘땡큐 미니’라는 4글자가 담긴 파일을 지금까지 수백 번 듣고 또 들었습니다. 이브라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브라힘, 삼촌이 너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노력할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니마 이야기
많은 분이 2023년 10월 7일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또다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곳이 팔레스타인에서도 가자 지구Gaza Strip라는 곳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인구 약 230만 명의 가자에서 지난 10개월 동안 3만 9천 명가량이 살해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1만 5천 명 이상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입니다. 게다가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있는 실종자 수가 1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있을지 알 수 조차 없습니다.
통계나 숫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인생이 그렇게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알자지라> 앱을 켜서 팔레스타인 관련 뉴스를 봅니다. 지난밤 이스라엘이 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혹시나 휴전했다는 소식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어느새 제 일과가 되어버렸습니다.
며칠 전, 전쟁과 관련한 많은 뉴스 가운데 아기 니마Nimah의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가자에 살고 있는 여성 알라아Alaa에게는 남편 압둘라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들은 모두 11번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떠돌았다고 합니다. 피난 생활을 하던 지난 1월, 임신 중이던 알라아는 통증을 호소했고 가족들은 그녀를 병원으로 옮기려 애썼습니다. 남편이 차량을 구하러 나갔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알라아는 갑자기 통증이 심해지는 걸 느끼며 신께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제발 지금 말고 병원에서...
남편이 돌아왔을 무렵 이미 아이가 나오고 있어서 압둘라는 신생아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쳤고, 가까이 있던 친척이 가위를 가져와 탯줄을 잘랐다고 합니다. 그렇게 전쟁 한 가운데 길거리에서 태어난 아이가 ‘니마’입니다.
이제 6개월 된 아기 니마의 인생 앞에는 어떤 현실이 버티고 있을까요.
어떤 아이들은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맞아 자신들이 조각난 뒤에도 이야기를 전하거나 최소한 녹화라도 할 수 있는 새롭고 영리한 방법을 고안했다. 자기 시체가 확실히 확인될 수 있도록 손발에 마커로 자기 이름을 써 둔 것이다. 이걸 SNS에서 공유하고 있었다. 어떤 녀석들은 자기 죽음을 전화로 알릴 수 있도록 가족 전화번호까지 써 두었다.
- 아테프 아부 사이프, <집단학살 일기>
이번 전쟁을 직접 겪으며 쓴 한 사람의 일기입니다. 가자의 어린이들은 내일이라도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폭격으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몸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새기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폭격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가자의 어린이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니마뿐만 아니라 가자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생존과 안전입니다.
니마가 폭격에서 살아남는다면 엄마든 아빠든 누군가 어린 그녀와 계속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걸기도 하고, 니마가 자다가 칭얼대면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라도 하면 누군가는 니마를 꼭 안고 달래줘야 합니다.
이렇게 니마를 보살필 그 누군가도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2만 명 가까운 가자의 어린이·청소년들이 부모를 잃거나 부모로부터 분리된 상태여서 앞으로 니마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이 주어질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먹고 살기
니마에게 중요한 일 또 하나는 먹는 것입니다. 음식은 아이에게 생존과 성장, 심리적 안정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수많은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심각한 식량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농지·시장·주택 등 식량이나 식재료를 생산하고 이를 공급해서 소비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 많은 빵집을 폭격해서 파괴했고 사람들은 돈이 있어도 빵을 사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빵집은 밀가루를 구하기 어려워 문을 닫거나 빵집 주인도 살기 위해 가게 문을 닫고 피난을 떠나버렸습니다. 전쟁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존에 꼭 필요한 영양분 섭취 시스템마저 파괴한 것입니다.
가자 지구에 식량 위기가 몰아닥친 두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이 식량을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땅과 하늘, 바다를 완전히 봉쇄한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외부에서 식량이나 의약품을 들여보내려 해도 이스라엘은 이를 금지하거나 일부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급할 수 있는 식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식량을 실은 트럭이 가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민간인들까지 식량을 실은 트럭을 가로막거나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
가자의 식량 위기에 대해 신디 매케인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지난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자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전면적인 기근 상황이 남쪽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어린이를 먹이기 위해 자신의 식사량을 줄이거나 아예 끼니를 건너뛰더라도 절대적인 식량 부족 사태를 극복하기는 역부족입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서서히 굶겨 쇠약하게 하고 쓰러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단지 전쟁이라 하지 않고 ‘인종청소’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제가 사는 곳은 경기도 고양시입니다. 우리 집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고, 앞에는 놀이터가 있어서 아침이고 저녁이고 언제나 어린이의 소리를 듣고 삽니다. 가위바위보 하는 소리도 있고, 술래잡기를 하는지 아~하면서 도망을 치는듯한 소리도 있습니다. 때로는 ‘집에 가기 싫어’ 하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면 팔레스타인에서 폭격으로 죽은 아빠의 신발을 끌어안고 우는 소리, 무너진 건물에서 구조되자마자 제일 먼저 ‘엄마는 괜찮아요?’라고 묻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깨진 플라스틱 통을 들고 구호 식량을 얻기 위해 어른들 틈에서 악다구니를 쓰는 소리,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기 위해 급수 차량 앞에 길게 늘어서 내뱉는 한숨 소리도 들립니다.
하나의 지구별 위에 어쩜 이리도 서로 다른 어린이의 소리가 제 귀를 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들려오는 그 아픈 소리가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니 ┃ 평화활동가. 팔레스타인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에 물들다>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만드는 평화의 세계를 꿈꿉니다. miniwat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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