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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41_2 채창수_남북의 ‘관계’ 어떻게 가르칠까?

by 어린이어깨동무 2025. 2. 19.

[한반도 평화교육] 

남북의 ‘관계’ 어떻게 가르칠까?

 

채창수

 

 

‘작은 연못 속 붕어 두 마리’의 특수한 관계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 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평화통일 교육에 관심을 갖고 나서 우연히 김민기의 ‘작은 연못’을 듣다가 무릎을 ‘탁’ 친 경험이 있다. 이 노래는 ‘남과 북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싸움의 끝은 공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절묘하게 남북 관계를 묘사하고 있을까? 남북 관계사를 수업할 때 이 노래를 들려주고 노래의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묻곤 한다. 

‘작은 연못’ 노래를 통해 어렴풋이 남과 북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남과 북이 한국 전쟁 후 70여 년간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24년도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간에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했다. 이 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을 것이다. 이제부터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면 그전까지는 ‘평화로운 두 국가 관계’였다는 말인가? 아니면 남과 북이 ‘두 국가가 아닌 그 무엇’이었는데 이제 ‘두 국가 관계’가 되겠다는 것인가?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이들이 남과 북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갖기 위해서, 남북의 미래를 놓고 토론을 벌이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남북 관계사를 다루는 수업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작은 연못’’이 수록된 앨범 커버(1993)

 

 

북한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골룸’ 

 

남한이 북한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1948년 정부 수립 전후를 살펴봐야 한다. 1948년 5·10 총선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이 선거는 38선 이남에서만 치러진 선거였다. 그해 12월 남한 정부를 승인한 유엔 총회 결의안 제195호에도 이러한 사정이 담겨 있었다. 결의안 195호 2조의 앞부분은 ‘대한민국 정부는 5·10 총선거를 통해서 수립된 정부이고 선거를 치른 지역에서 관할권을 갖는다.’이고 뒷부분은 ‘이 정부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하에서 수립된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다.’라고 되어 있다. 뒷부분만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총괄하는 정부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전체를 통합적으로 해석하면 38도선 이남에 대한 관할권만을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엔이 인정한 대한민국 정부의 영토는 어디까지일까? 

우리 헌법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제헌 헌법부터 87년 헌법까지 우리 헌법에는 영토 조항이 항상 존재했고, 그 문구는 현행 헌법 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와 동일했다. 그런데, 헌법 3조의 영토 조항은 여러 가지 모순을 안고 있고 문제들을 일으킨다. 첫 번째, 영토 조항은 국제적인 기준과 충돌하고 있다. 북한은 1991년 유엔에 남한과 동시 가입하였고, 현재 수교한 나라가 159개국이다. 유엔과 북한 수교국들은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영토를 한반도 전체라고 규정하면 북한 주민들도 우리 국민이 되고, 이들을 강제로 붙잡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북한 정권은 불법 집단(반국가단체)으로서 타도 대상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 4조는 평화통일에 대한 지향을 담고있다. 평화통일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통일을 말하는데, 이는 북한을 합법적 존재로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영토조항은 평화통일 조항과 모순된다.*

*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가 북한 체제의 전면 부인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포괄적인 ‘자유민주’의 의미로서 다양한 해석에 열려있다는 의미로 본다.

 

헌법 3조와 4조의 모순은 역대 정권들의 대북정책에도 고스란히 드러나서 진보 정권은 4조에 기반한 화해 협력 정책을 추진하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3조에 따라 대북 강경책을 추진한다. 헌법 3조와 4조의 충돌은 북한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릿속 갈등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처럼 한 자아는 ‘북한은 타도의 대상이야’라고 속삭이다가,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나면 ‘아니야, 북한은 대화와 협력의 대상이야’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국민들의 머릿속 갈등마저 문장 속에 담아놓은 헌법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잠정적 특수관계는 도대체 무슨 관계?

 

한국 전쟁 이후 가장 중요한 남북 대화 세 장면을 꼽으라면 7·4 남북 공동성명(1972),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1991), 그리고 6·15 남북 공동선언(2000)을 들 수 있다. 7·4 남북 공동성명은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남북 간 최초의 합의 문서로서 7개 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1항에 유명한 자주 · 평화 ·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이 담겨 있다. 그러나, 당시 남과 북은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문의 서명자 공식 직함에 국호를 사용하지 않고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 김영주’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남과 북이 마주 보고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으면서도 동시에 상대의 실체를 부정하는 당시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이라는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북방정책을 추진하여 1990년대 초 소련 · 중국과 수교할 수 있었다. 북한은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한이 제의한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을 수락하였다(1991). 이 시점에서 남과 북은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했을까? 남북이 고민한 결과가 남북 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담겨 있다. 남북 기본합의서는 남북의 총리급이 서명한 최초의 정부 간 공식 합의 문서로서 평화 공존의 핵심 사항들을 합의한 역사적인 문건이다. 특히 전문에서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로 규정하여 분단 상황은 어디까지나 과도적이며, 통일을 지향하는 노력이 민족의 과제임을 명시했다.  

그런데,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의 의미는 무엇일까? 유엔 동시 가입은 남과 북이 상대방의 국가적 실체를 ‘사실상’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합의서의 내용은 남과 북이 각각 국가이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일반적인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와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면, 둘은 잠정적으로 분단된 상태일 뿐이고 언젠가 통일하기로 약속한 특수관계, 즉 통일을 목표로 하는 민족 내부 관계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1991년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한 후 악수하는 남북의 총리

 

 

2000년 6·15 공동선언은 남북 정상이 직접 합의하고 서명한 최초의 선언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특히 2항의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은 남과 북의 통일방안에서 교집합을 찾아낸 것이었다. 남한의 통일 방안은 화해·협력, 남북연합, 통일국가의 3단계 방식인데, 2항은 남북이 서로의 ‘특수관계’를 좀 더 진전된 ‘남북연합’이라는 국가연합의 형태로 발전시켜 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수십 년에 걸친 남북 대화에는 비록 그 약속들을 실천하지 못했지만, 당시에 서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고, 앞으로 어떤 관계를 지향할지에 대한 중요한 합의들이 담겨있다. 남북 대화는 북핵 문제와 맞물리며 가다서기를 반복하다 결국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갈등이 심해지면서 북한이 기존의 남북 합의를 부정하고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적대적 두 국가 관계란 더 이상 남한과 통일을 얘기하거나 지향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 남과 북은 별개의 두 국가, 전쟁 중인 두 국가 관계라는 선언이다. 

 

 

남북 ‘관계’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

 

남북 ‘관계’의 중요한 변화들을 살펴봤지만, 아직 더 고민하고 질문해 볼 것들이 있다. 첫째, 앞에서 살펴본 우리 헌법 3조와 남북 기본합의서 내용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무엇일까? 헌법 3조는 북한을 불법집단으로 여전히 규정하고 있지만, 기본합의서는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둘은 모순되고 충돌한다. 이 대목에서 수십 년간의 남북 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정말로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그 모순을 해결하려 할 때 부딪칠 어려움은 무엇일까? 이런 대화를 아이들과 나눠보면 어떨까?
 
둘째, 기본합의서의 ‘특수관계’를 자세히 알아봤지만, 그래도 그게 어떤 관계인지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를 연인 또는 부부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해 보면 어떨까? 교실에서 모둠들에 이 질문을 탐구 과제로 주고 토의 · 발표 시켜보는 것도 좋겠다. ‘특수관계’란 과거에 크게 싸우고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뒤 헤어졌던 남녀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친밀해지면서 언젠가 재결합하기로 약속한 그런 ‘관계’라고 이해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친구와는 다른 좀 특별한 관계일테니까.
 
셋째, 최근 남북 관계의 현실을 반영하여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를 내려놓고 보통의 두 국가 관계를 도모하자는 주장이 늘고 있다. 이 주장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면 좋겠다. 적대적 관계를 멈추고 다시 만들어야 할 관계는 특수관계일까? 보통 국가 관계일까? 보통의 평화로운 두 국가 관계란 어떤 걸까? 싸우고 헤어졌지만 화해하고 다시 친구로 남기로 한 남녀? 싸우지만 않을 뿐 무덤덤하게 지내다가 멀어지는 건 아닐까? 그러다가 둘은 영영 남남이 되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다.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휘익 지나간 후에

검은 물만 고인 채 한없는 세월 속을
 말없이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김민기의 ‘작은 연못’을 들으면서 다시 남북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다시 한번 가사를 음미해본다. 

 

 

|사진출처|

정영철·정창현,  『평화의 시선으로 분단을 보다』, 유니스토리, 2018 

 

|참고문헌|

박태균,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창비, 2015 
차병직 외, 『지금 다시, 헌법』, 노르웨이숲, 2022
김연철, 『70년의 대화』, 창비, 2018 
평화재단, 「남북간에 마이웨이를 그만두고 특수관계를 회복하자」, 『현안진단』 332호 2024.07 
문장렬, 「‘천둥번개’같았던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다시 시작하자」, 한겨레신문, 2024.11.02 
정욱식, 「‘탈북한’과 ‘두 국가론’은 어떨까?」, 한겨레신문, 2024.08.11

 

 

채창수 | 전주 완산고등학교 수석교사. 교사와 연구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평화를 일구는 역사 수업을 실천하고 있다. 매년 ‘한반도 평화’라는 큰 틀에서 새로운 주제를 연구하고 개발해 전북 교사들에게 수업을 공개하면서 전북평화통일교육연구회에 가입하도록 갖은 방법으로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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