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연극]
무말랭이 연극만들기 - 평범한 동네주민들의 연극 도전기 Ⅴ
'산토끼'를 향하여 2
남동훈
누워 있는 글자를 일으켜 세우기
종이 위에 누워 있는 글자를 무대 위에 일으켜 세우는 것. 연극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다. 희곡에서 무대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과 노력들을 짧지만 생동감있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극 '산토끼'는 디바이징 시어터(Devising Theatre) 제작 방식을 취했기에 기존의 희곡을 선택해서 연습하는 경우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디바이징 시어터와 '산토끼'의 창작과정에 대해서는 앞서 소개했기에 이번 호에서는 희곡에서 출발하는 연습과정을 중심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일반적인 연극연습의 과정
희곡 선정을 마친 시점을 기준으로 연습은 대본연습(Reading), 동선연습(Blocking), 앙상블 연습(Emsenble), 총연습(Run-through) 등 크게 네 과정으로 진행한다. 대본연습은 작품분석과정이라고도 하는데, 작품의 첫인상, 줄거리, 인물과 그들의 관계, 장면 분석 등을 포함한다. 동선 연습은 대사를 중심으로 인물의 행동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드러내는 과정으로 연습 기간 중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앙상블 연습은 인물들과 행동의 조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총연습은 말 그대로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한 번에 이어가는 연습이다. 특히, 무대와 조명, 의상과 분장 등 대사 이외의 공연언어들을 동반하면서 공연의 리듬과 템포, 밀도와 강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디자인 파트는 어떻게
한편, 배우 이외에 무대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 파트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보통 배우와의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구상을 마치고, 연기연습 과정과 결과에 따라 진전시켜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반인 연극 활동에서는 그 기반을 마련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다행히도 무말랭이는 평범하면서도, 결코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무대 디자이너 파스텔을 비롯하여, 의상 디자이너 시원, 조명 디자이너 밍이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죽은 후 ‘영혼’된 조상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대 디자인 스케치(design by 파스텔)
희곡 '산토끼'의 첫인상은
2010년 12월 30일 첫 연습. 방금 제본을 한 따끈따끈한 대본이 나왔다. 기대했던 만큼이나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첫 읽기를 마쳤다. 그리고 얼마 동안의 침묵. 이어서 밝혀진 침묵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설레임’의 집단적 발산이었다. 그 짧은 침묵의 시간 동안 다들 자신들이 서게 될 무대를 꿈꾸고 있었다, 그만큼 투명하고 맑은 느낌을 받았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배우들이 작가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자, 희곡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첫인상이었다. 작품분석과 배역선정을 통해 더 채우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여백도 첫인상만큼이나 충분했다.
대본연습의 실제
두 번째 연습부터 본격적인 분석을 시작했다. 보통 단어의 뜻과 같은 아주 단순한 궁금증부터 이해가 가지 않은 대사나 장면 등을 중심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이때 작가나 연출가에게 먼저 묻기보다는 배우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그 과정을 다른 배우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배역선정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배역선정 이전에는 일반적이고 드러난 사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배역선정을 마친 뒤부터는 인물의 전사(前史. pre-history)를 중심으로 훨씬 더 심도 있게 접근해야 한다.
인물의 전사(前史. pre-history)란
인물이 살아온 역사를 말한다. 희곡에 등장하기 전부터의 전 생애는 물론 막과 막, 장면과 장면 사이의 시간의 흐름도 포함한다. 타고난 유전적, 신체적, 기질적 특성은 물론 성장배경과 조건, 가정적. 사회적 환경, 중요한 경험과 사건들과 이를 통해 후천적으로 생겨난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정서적 특성까지 인물의 모든 측면을 포괄한다. 그리고 다른 인물들과의 전사, 즉 관계의 역사성도 포괄한다. 인물의 전사를 파악하는 과정은 인물의 무의식까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인물의 행동을 파악하고 구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대본연습 과정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산토끼’ 연습에서는 등장인물 연표를 만들어 활용하기도 했다.
다음 사진처럼 기본 연표를 만들고 해당연도마다 희곡에 드러난 주요 사건, 대사로 파악할 수 있는 사건, 충분히 있었음 직한 사건 등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인물 창조작업을 진행해갔다.
배역선정에서 의상 & 분장까지
한편, 배역 선정은 희곡 선정과 더불어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이다. 오죽하면 희곡과 배역을 선정하고 나면 연출가의 일은 다 끝났다고 할까. 시민연극에서의 배역선정은 전문연극에서의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하다. 왜냐하면 공연 성패의 기준이 다양할뿐더러 자칫 의도와는 별개로 참가자들의 불만이 가장 집중되기 쉬운 부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보다 상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그 중요성과 시민연극활동의 특성을 고려해서 배역선정은 대표인 쏭과 작가 부추와 함께 상의하고 결정했다.
여기에 의상과 분장이 날개를 달아주었다. 죽어서 저승에 살고있는 조상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의 우화적 특성상 그 어느 때 공연보다 분장의 중요성은 높았다. 역시나 도움이 필요했고, 단원들의 아이디어들이 속출했다. 그 결과, 효과적이면서도 접근하기 쉬운 의상과 분장 컨셉을 잡고 구현할 수 있었다.
![]() 참새가 된 할머니 역 저별 |
![]() 큰할머니 역 시작 |
코앞보다 더 가까이 다가온 공연
늘 그렇듯 연습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공연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더 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더 많은 공연을 경험한다고 해서 그 두려움이 사라진다고는 장담할 수도 없다. 그저 이 두려움을 즐기길 바랄 뿐이다. 다행히도 무말랭이는 그런 것 같다. 공연 직전 분장실 모습을 보라. 어디서 두려운 기색 하나라도 찾아볼 수 있느냔 말이다.
![]() |
![]() |
공연을 앞둔 분장실 풍경 |
남동훈 | 연출가. 공연 창작과 더불어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 상임연출, 성미산동네연극축제 예술감독, 전국생활문화축제 총감독, 참여연대아카데미 시민연극워크숍 강사 및 연출 등 시민문화예술활동도 함께 해왔다. 지금은 창작집단 고릴라조합Go-LeeLa 대표로 활동 중이다. 2020년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공존의 시선으로 남북을 잇다>를 함께 펴냈다. 지금은 어린이어깨동무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피스레터(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스레터 No42_3 임수연_바람을 닮은 어린이들과 함께 뛰노는 봄 (1) | 2025.05.17 |
---|---|
피스레터 No42_4 심은보_희망을 가꿔가는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 (2) | 2025.05.17 |
피스레터 No41_1 정영철_오로지 민주와 평화의 연대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 (0) | 2025.02.19 |
피스레터 No41_2 채창수_남북의 ‘관계’ 어떻게 가르칠까? (0) | 2025.02.19 |
피스레터 No41_3 정지영_독일의 ‘기억 문화’가 주는 교훈 (1) | 2025.0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