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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7_2 김진환_천천히 걷되 걸음을 멈추지는 말자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8. 13.

[한반도 평화교육] 

천천히 걷되 걸음을 멈추지는 말자

김진환

 

며칠 전 강의를 하러 갔다가 동료 강사에게 들은 얘기다. 한 통일교육 강사가 외국인에게 아래 같은 이유로 남북 ‘통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단다. “통일이 되면 남한의 자본, 기술과 북한의 자원, 노동력이 결합해 경제적으로 급성장할 수 있다. 줄어든 국방비는 복지비로 돌릴 수 있고, 철도·도로가 연결돼 대륙 진출도 활발해진다. 북한 주민의 경제적 고통을 덜 수 있고, 이산가족도 고향과 가족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러자 그 외국인은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그런 목표라면 통일하지 않아도,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자유롭게 오고 가기만 해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통일하려 하나요?”

대세가 된 ‘평화공존’
때마침 대한민국 성인들이 ‘통일’보다 ‘평화공존’을 훨씬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통일연구원이 2021년 4~5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에게 “남북한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통일은 필요 없다”는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묻자, 긍정응답(다소 동의함, 매우 동의함) 56.5%, 부정응답(전혀 동의하지 않음, 별로 동의하지 않음) 25.4%로 긍정응답이 부정응답을 두 배 이상 앞선 것이다. 한편,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국민이 서로 왕래할 수 있고 정치 경제적으로 협력한다면 그것도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63.2%가 긍정했고(다소 동의함, 매우 동의함), 부정적 의견(전혀 동의하지 않음, 별로 동의하지 않음)은 10.7%에 불과했다.

요컨대 오늘날 대한민국 성인들은 전통적 의미의 통일, 그러니까 남북이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내는 통일을 그다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의 통일교육 강사가 외국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성인에게 같은 강의를 했어도, 똑같은 질문을 들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만약 ‘하나의 국가’ 만들기가 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한반도 평화교육’은 남북 평화공존을 넘어 ‘통일’까지 시야에 넣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앞의 반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경제적 이익에 주목한 ‘경제담론’이나 북녘 주민과 이산가족 등이 겪는 고통에 초점을 맞춘 ‘치유담론’은 이미 힘이 빠지고 말았다. 당신이 경제 성장과 치유를 통일 이유로 들 때마다,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한다면 통일 없이도 경제 성장은 가능하고, 이산가족도 고향을 오갈 수 있을 것이란 반론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니 더 이상 토론 없이 대화를 마칠 것인가? 그러기에는 아쉬움이 클 것이다. 그럴 때는 이렇게 한번 말해보자. “한반도의 지정학적 처지 탓에 ‘통일 없는 평화’는 불안정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북은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과거가 오늘에 주는 교훈
외교사학자들이 자주 쓰는 지정학적 비유가 있다. 한반도가 대륙세력에 포함되면 ‘해양을 겨누는 칼’이 되고, 해양세력에 포함되면 ‘대륙으로 진출하는 다리’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세시대 조선은 일본, 명, 청 등 주변국 대결에 휩쓸리다 결국 청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9세기 후반에는 청과 일본(청·일전쟁), 그리고 청이 약화된 이후에는 대륙세력 러시아와 오래 전부터 한반도를 노려왔던 해양세력 일본이 충돌했고(러·일전쟁), 이 결과 한반도는 일제 식민지로 전락해 대륙진출의 다리로 꼬박 35년을 지내야 했다.

주목할 점은 청·일전쟁 전부터 이미 한반도 분할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주미 일본 공사는 청·일전쟁 직전에 조선 8도 중 남부 4개도(강원, 충청, 전라, 경상)와 북부 3개도(황해, 평안, 함경)를 각각 일본과 청이 지배하고, ‘경기’만 조선 국왕이 통치하게 하자는 의견을 본국에 건의했다. 당시 영국 외무대신도 주영 일본 공사와 청 공사에게 서울을 경계로 남쪽은 일본이, 북쪽은 청이 점령함으로써 전쟁을 막자는 안을 제시했다. 1896년 6월에는 러시아황제 대관식에 참가한 일본 특명전권대사 야마가타가 러시아 외무대신 로바노프에게 한반도를 북위 39도선(대동강과 원산 사이)을 경계로 분할해 각자 세력권에 두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뒤 한반도 분할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됐다. 1945년 광복 직후 미국과 소련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나눠 맡겠다는 명분으로 북위 38도선을 그으면서 ‘지리적 분단’이 시작됐고, 1948년에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며 ‘정치적 분단’까지 이루어졌다. 앞의 비유를 활용하면, 미국과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으로 돌입하면서 38선 이북은 대륙세력권에, 38선 이남은 해양세력권에 포함돼 칼이건 다리건 어느 한 쪽에서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없는 ‘부러진 칼’, ‘동강난 다리’가 되고 만 것이다.1) 이처럼 지난 수백 년 간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를 자기 세력권에 편입시키려 노력했다. 곧 한반도는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 바깥으로 끌려들어가는 힘인 지정학적 ‘원심력’이 강하게 작동하는 땅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과 대한제국 지배세력은 자주적이고 응집된 태도로 원심력에 대응하기보다는, 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특정 국가의 후원을 기대하며 분열을 일삼았다. 요컨대 일제 식민지배와 분단은 모두 한반도 내부의 ‘구심력’을 키우지 못한 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 충돌에 휩쓸리면서 겪은 비극이다.

1) 강만길.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 선인, 2013, 40~49쪽.

그렇다면 20세기 중·후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 곧 냉전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 원심력은 여전하다. 신흥 강대국 중국과 오랫동안 일등국가 지위를 유지해 온 미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남북이 지정학적 원심력에 대응할 구심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에 또 다시 휩쓸린다면, 중세 부터 반복된 한반도의 비극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2) 따라서 남과 북에게 ‘구심력 키우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게 바로 과거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2)통일부 통일교육원, 『2020 통일문제 이해』, 통일교육원 연구개발과, 2019, 195~196쪽.

‘한반도 평화교육’의 과제
물론 남북 평화공존도 남북 대결보다는 구심력이 강해진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남북이 대결을 멈추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역시 소중한 목표다. 그렇지만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지정학적 충돌 가능성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통일을 지향하지 않는 평화공존은 외부 정세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정치적으로 분열된 공동체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분열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역사에서 확인했다. 반대로 한반도 내부의 정치적 통합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외부 정세 변화에 자주적이고 응집력 있게 대응할 가능성도 커진다. 과거 6·15남북공동선언 직후 높아졌던 한반도의 외교적 역량과 위상을 떠올려보면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통일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통일이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라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오랜 체제경쟁과 군사충돌은 남한 주민과 북한 주민의 마음속에 상대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을 뚜렷이 새겨놓았다. 남북 주민 간 적대감과 불신의 해소 없는 통일은 가능할 리 없으므로, 전쟁의 완전한 종식,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은 통일의 전제 조건이다. 무엇보다 군사분계선, DMZ 같은 분단의 ‘물리적 장벽’이 사라지더라도, 오랜 대결을 거치며 남북 주민이 갖게 된 ‘마음의 장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하고, 상호이해와 존중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시간대가 바로 ‘평화공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반도에서 평화 없는 통일은 공허하고, 통일 없는 평화는 불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교육’ 종사자 앞에는 많은 과제가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남북 군축 방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 방안 같은 ‘평화의 제도화’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도록 도와야 하고, 남북 대결의식을 평화공존 의식으로 바꾸는 ‘평화의 내면화’에 필요한 태도와 역량, 예를 들면 다름의 인정, 다양성 존중, 비폭력적 의사소통, 평화적 갈등해결 능력 등도 키우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남북이 서로 지닌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상호이해교육도 해야 한다. 나아가 통일이 한반도 평화 진전에 왜,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지정학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설득해나가야 한다.

그러니 한반도 평화교육은 힘들 수 있다. 그래도 이 많은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기쁨과 보람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 마음속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수많은 한반도 평화교육자들에게 경의를!

김진환 | 동국대학교에서 1990년대 북한사회 위기를 주제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에서 HK연구교수로 근무하며 남북 문화 비교 연구,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통일의 관계 연구 등을 수행했다. 현재 국립통일교육원 교수로 재직하며 북한사회와 주민생활, 근현대사의 교훈과 평화·통일, DMZ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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