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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7_4 김양희_북한의 식량부족 기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8. 13.

[평화의 눈으로 읽는 북녘] 

북한의 식량부족 기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김양희

 

대북제재 상황에도 북한 주민 식생활 개선 눈길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보도한 영상들을 보면 북한의 사람들은 우리의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옷차림도 제법 세련됐고 다들 핸드폰을 든 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평양의 맨해튼’(줄여서 평해튼)이라 불리는 려명거리의 화려함은 서울 같은 세계적인 도시들의 화려한 야경에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 일부 종편 채널에서는 아직도 북한이탈주민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 사람들이 굶어 죽을 정도로 어려웠던 이야기를 서로 앞다퉈가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과연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싶을 지경이다. 북한의 화려한 발전에 발맞춰 주민들의 식생활도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매년 탈북 직전의 식생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눈여겨볼 건 2015년 이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해 2019년 조사에서 하루 세 끼 식사를 한다는 응답자가 87.9%였고, 고기를 매일 또는 주 1회 이상 먹는다는 응답이 62.1%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대북제재로 인해 고기 가격이 급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2012년 24.4%에 비해 2.5배를 넘긴 수치이다. 또한 북한에서 살 때 거주지역이 국경 근처 등 지방에 살던 사람들의 비중이 높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조사대상임을 고려할 때 평양 등의 지역에서는 식생활 수준이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400여개 넘는 시장 운영
북한 주민들의 식생활이 개선된 이유는 시장 때문이다. 사회주의국가인 북한에는 시장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배급제만으로는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이미 1964년부터 농민시장을 허용했다. 농민시장은 농민들이 남는 농산물을 가져와 파는 시장으로 농촌에서 소소하게 운영되었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공장이나 기업소에서 남는 재료 등으로 만든 생필품까지 거래되면서 더욱더 커졌다.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 국가가 배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면서 시장은 급격히 확대되었고, 북한 당국은 2003년 공식적으로 시장을 허용하게 되었다. 통일연구원이 2016년에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북한 전국적으로 총 404개의 시장이 있으며 북한 전역에 남한의 동대문시장만큼 큰 시장이 9개 정도 운영 중이다.

이처럼 북한 시장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개개인 판매자들뿐 아니라 우리로 치면 회사 격인 기관이나 기업소 등도 나서고 있다. 이런 기관이나 기업소들은 중국, 러시아 등과 적극적으로 무역을 하면서 큰돈을 벌어들인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 시기 재정난이 심각해지자 각 기관에 자체적으로 예산을 벌어 운영할 것을 지시하고 상업적 활동과 시장 참여를 허용해주었다. 1990년대 초 각 기관이나 기업소별로 식량 배급의 자체 해결 지시가 하달되자 식량을 구하기 위한 새로운 무역체계가 만들어졌고, 이후 북한의 당, 군, 정의 거의 모든 기관이 자체 무역회사를 만들어 외화벌이에 나섰다.

시장, 배급제를 대체할 식량공급루트
고난의 행군 시기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굶어 죽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보름마다 한 번씩 식량이 배급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저장해 놓을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비축해둔 것이 없으니, 배급이 끊기자 당장 먹을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확대되면서 주민들이 돈을 벌게 되자, 북한 주민들의 식생활도 개선되었다. 배급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시기에는, 특권층을 제외한 대다수 일반 주민들은 배급되는 품목에 의해 식생활이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에서 돈을 내고 음식을 사먹으니 돈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식생활 수준에 큰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오히려 배급제가 제대로 운영되던 시기에는 쉽게 먹을 수 없었던 술이나 돼지고기도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장을 통해 번 돈을 가지고 식량을 사서 비축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곡물생산량이 고난의 행군 시기와 비교해 크게 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다. 시장이 주민들의 식량 사정을 얼마나 완화했는지는 임수호 박사 등의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2007년에 북한의 식량 상황이 1990년대 중반과 비슷함에도 이전과 달리 아사자가 별로 발생하지 않았다. 1996년과 2007년도를 비교해보면 북한의 식량 총공급량은 각각 474만 톤과 471만 톤으로 비슷한 수준이지만 다음 연도 아사자의 숫자는 1997년에 100만 명 전후인데 비해 2008년에는 100명가량으로 대폭 줄어든 상황이다. 북한의 1990년대 대량 아사사태는 식량 공급의 감소만이 아니라 붕괴한 배급제를 대체할 새로운 식량공급 루트가 제도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협동농장 생산분 중 초과분, 사적 경작에 의한 생산물, 기타 중국 등에서 수입 혹은 밀수된 식량 등이 거래되는 시장이 제도화돼 식량공급이 감소하더라도 대량 아사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다.

국경봉쇄로 인해 식량 부족 어려움 부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북한의 식량부족 상황과 관련한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북한을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국가로 또다시 지목했다. FAO는 최근 발표한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분기 보고서(Crop Prospects and Food Situation Quarterly Report)’에서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0월 사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을 약 86만t으로 추산하며 북한을 외부의 지원이 필요한 45개 나라에 포함시켰다. 또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 15일 조선로동당 8기 3차 전원회의에서 “지난해 태풍 피해로 농업 부문에서 알곡생산계획을 미달하면서 현재 인민들의 식량사정이 긴장해지고 있다”며 북한 식량사정의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어 6월 17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민들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비축된 군량미를 푸는 것으로 알려진 ‘특별명령서’에 서명했다.

북한은 늘 식량이 부족한 국가이고, 매번 식량 부족과 관련한 기사들이 보도되어 최근의 기사들이 별스러울 것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잘사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이제 북한사람들도 재산이나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시장이 있어 고난의 행군 시기 같은 아사현상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니 괜찮은 걸까. 그러나 최근의 코로나 상황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크게 변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더욱더 그 어려움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처절하게 국경을 봉쇄했던 탓일 것이다.

지난해 7월 26일 <조선중앙통신은> “개성시에서 악성 비루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7월 19일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은 국가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하고 특별경보를 발령했으며 개성시를 완전 봉쇄했다. 우리는 자가격리 기간이 2주지만 북한은 더욱 더 조심을 하기 위해 30일 동안 자가격리를 하다보니 그 피해가 큰 상황이었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봉쇄지역에 식량과 생활보장금을 특별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이 같이 조금 과할 정도로 코로나에 대응하는 것은 북한의 현재 의료수준으로는 코로나 확산시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8월 비상방역법을 만들어 전시상황에 따르는 엄격한 통제와 처벌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북한 사회안전성은 국경지역 1~2km 내에 코로나 방역을 위한 완충지대를 설치하고 완충지대에 들어왔거나 국경차단물에 접근한 인원과 짐승에 대해서는 무조건 사살할 것을 지시했다. 실제 지난해 9월 24일 해수부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신을 소각하는 사건도 코로나가 원인으로 추정됐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중국과의 공식적인 무역은 물론이고 친척방문 등으로 오가며 얻는 식량, 사적인 거래 등 중국의 식량이 공식적인 무역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의 시장에 많이 들어왔었는데 국경이 폐쇄되면서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장의 식량공급 루트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남한에서도 여전히 생활고에 굶어 죽는 사람들의 기사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하물며 식량이 부족한 채 국경을 봉쇄한 북한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 여전히 시장이 작동해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보이지만, 그래도 이는 앞으로 북한의 식량 부족 기사를 늘 있었던 기사가 아닌 가슴으로 마주하며 좀 더 지켜봐야 할 이유이다.

 

 

김양희 | 전공을 살려 식품 전문기자로 일하던 중 운명처럼 <통일뉴스>의 민족음식이야기 칼럼을 쓰게 되었고, 이후 사람들이 친숙한 음식을 통해 북한을 떠올려보길 바라며 <평양랭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되갔구나>라는 책을 발간했다. 독자들과 함께 옥류관에 평양랭면을 먹으러 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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