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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2_1 정영철_짙어지는 위기, 다시 평화

by 어린이어깨동무 2022. 11. 18.

[한반도 이슈] 

짙어지는 위기, 다시 평화

정영철(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다시, 평화이다


애써 쌓아온 한반도 평화가 지난 5개월 사이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2018년 남북이 합의한 ‘9.19 군사분야 공동합의서’는 누가 먼저 합의를 파기하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 사실상 사문화되고 있다. 이를 넘어 남북이 서로를 향해 더 센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며 자랑하기에 바쁘다. 여기에 더해 상대방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그 힘을 과시하기에도 바쁘다. 사실, 한반도는 이미 서로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능력과 무기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남북의 폭주를 제어할 아무런 장치도, 주변국의 손길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남북의 ‘강 대 강’의 대결 앞에서 과거 냉전 시절 서로를 향한 혐오와 파괴의 위협과 승패의 말잔치만이 차고 넘친다.


한반도 밖의 상황을 보아도 다르지 않다. 유럽의 한 귀퉁이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한창이며, 이를 둘러싸고 과거 냉전의 대결이 다시금 부활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향해 공공연히 험악한 말을 주고받으며 언제든지 충돌을 불사할 태세이다. 이 뿐인가? 미국은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면서, 지금까지의 국제적인 협조 노선을 포기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과의 대결을 노골화하면서 일본과의 군사 동맹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으며, 일부 인사들은 자위대의 한반도 진주까지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은 중국, 러시아와의 냉전 시절을 연상시키는 연대와 동맹을 말하면서, 협상과 대화의 가능성을 후순위로 돌려놓고 있다. 지긋지긋했던 코로나 팬데믹의 고통에서 벗어날 즈음, 더 큰 위협이 전 세계 인류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한반도 안과 밖 모두 평화의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 평화는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매우 쉽다. 지금 우리는, 깨지기 쉬운 유리잔 같은 한반도의 평화를 조심스레 가꾸어 왔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순간에 처해 있다. 도대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채 돌아보지 못한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 역사는 진보해왔으며, 우리가 희망했던 평화의 길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꾸준히 발전해왔다. 역사의 힘을 믿고 묵묵히, 그리고 찬찬히 걸어갈 각오를 다져야 할 시기이다.

 

'2022 한반도 평화교육 국제포럼'에 참여한 청소년이 평화 아이디어를 쓰고있다.

 

지금의 한반도 평화 위협의 근원은 결국 2018년부터 시작된 한반도의 전쟁(대결과 갈등의 구조)을 끝내지 못한, 미완의 평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깨지기 쉬운 평화의 유리잔을 단단한 받침대 위에 올려놓지 못한 미완의 노력이 결국 지금의 위기에서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야 이미 알려진 대로 북미간 협상의 실패, 남북한 합의 이행의 실패 등에 있으며, 대북 강경정책을 노골화하는 현 정부의 등장, 북미간의 협상 실패 이후 ‘마이 웨이’를 외치는 북의 자세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를 막아낼 수 있는 뚜렷한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더 암울한 다가올 위기의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평화 노력이 겉으로는 허약해 보이지만, 무시 못 할 힘을 축적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시기, 우리가 수행해왔던 수많은 평화를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게 우리들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평화를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만들어내었다. 이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일방적인 평화의 파괴, 한반도의 위기를 불러오기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바로 이 역사의 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우리 주위에는 작은 목소리이지만 지역 곳곳에서 평화를 염원하고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평화는 바로 이런 작은 목소리들이 꾸준하게,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발걸음을 내 디디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평화’의 기치를 들고 나가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평화를 위한 연대의 가치를 높이 들고 ‘다시, 평화’를 외쳐야 한다. 위에서 허물어버리고 있는 평화를 아래에서는 꽉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한다. 그루터기는 죽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싹이 나고 잎을 피워내면서 다시금 커다란 나무로 자라기도 한다. 곳곳에 있는 평화의 그루터기의 힘을 믿고, ‘다시, 평화’의 신발 끈을 조여 매자.

 

지금의 허무함에 풀 죽어 있지 말자. 우리의 힘에 대한 지금의 연약함에 낙담하지도 말자. 지금 무너지고 있는 평화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안의 비관과 허무와 낙담이다. 이 모든 것을 넘어, 다시금 신발 끈을 조여 매자.

 

연대의 가치를 중심으로 ‘다시, 평화’의 길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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