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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2_2 김양희_인민들에게 맛있는 외국음식을 공급하라

by 어린이어깨동무 2022. 11. 18.

[음식으로 읽는 북녘] 

인민들에게 맛있는 외국음식을 공급하라

김양희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최근 북한의 어린이 유튜버가 유창한 영어로 북한 곳곳을 알리는 동영상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11살 송아라고 자신을 소개한 어린이가 평양의 대표 명소인 문수물놀이장에 있는 파도풀, 미끄럼틀을 비롯, 정구장, 암벽체험장 등을 소개하기도 하고, 하교길 길거리 매대에서 빙수를 사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들에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터넷 접속이 허용되지 않아, 만들어진 이미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현재 북한의 모습 일부를 볼 수 있기에는 충분하다.


북한에서 김정일 시대에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살자’,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라는 구호를 내세웠다면,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라는 구호가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우리민족끼리’라는 담론을 내세웠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민족 담론을 넘은 세계화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이의 일환으로 ‘송아’의 유튜브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송아의 유튜브 이전에도 2020년 ‘리수진’이라는 북한 어린이 유튜버가 북한 체제를 홍보하는 영상을 올렸지만 이번에는 외국인들을 겨냥해 영어영상을 올려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송아의 유튜브가 알려지면서 특히 더 주목을 받은 것은 아이들이 먹은 음식들이었다. 남한의 누리꾼들은 아이들이 먹는 빙수에 멜론, 수박, 참외 등 과일이 듬뿍 올려진 것을 보고 “멜론 등은 수입 과일인데,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송아는 또한 문수 물놀이장의 ‘무지개식당’이라는 ‘햄버거 가게’에 가서 핫도그 등을 먹었다. 북한에서는 민족음식을 강조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외국음식들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북한 짜장면은 ‘장비빔우동’


북한에서 외국음식이 소개된 것은 김정일 시대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극복하고 2000년대에 들어서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들도 맛있는 외국 음식을 맛보게 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외국 음식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그간 고난의 행군기 등을 겪으면서 민족음식을 강조한 북한은 여전히 민족음식 발굴에 역점을 두는 한편으로 ‘인민 생활 향상’이라는 주민복지 차원에서 외국 음식들을 들여온 것이다. 초기에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중국요릿집이 문을 열었으나 이후에는 다른 나라의 요리들로 확대됐다.

 

북한에서 특히 짜장면을 즐겨 먹게 된 계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 때문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11월 감자 산지인 량강도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하면서 “감자 농사에만 치우치지 말고 밀과 보리 농사도 잘해 주민들이 짜장면을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북한의 기초식료품공장에서는 된장 생산에 주력하는 한편, 짜장면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짜장면 전문점은 평양의 중심 종로사거리에 위치한 ‘옥류교자장면집’이다. 이 식당은 짜장면의 원조라고 할만큼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맛도 좋아 하루에 1,000여 그릇의 짜장면이 팔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옥류교자장면집을 가리켜 “분식을 잘하는 식당”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속성음식’이란 단어 만들어져

 

2000년 후반부터는 패스트푸드점 등 서양식 식당들도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는 2002년 있었던 ‘7·1경제관리개선조치’의 영향을 받아 2005년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2009년 7월 25일자 기사에 따르면, 평양 금성네거리에 6월 초 ‘속성음식센터’(패스트푸드점)인 삼태성청량음료점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평양에도 공식적인 첫 패스트푸드점이 등장한 것이다. 이 패스트푸드점은 워흘(와플) 판매점을 운영하는 싱가포르의 기업과 합작해 만든 것으로, 싱가포르 측은 설비만 제공하고 인력과 음식의 원자재는 모두 북한에서 해결하고 있다. 개업에 앞서 종업원들은 싱가포르 측이 파견한 담당자로부터 요리 기술과 봉사방법에 관해 교육받았지만 요리의 맛은 품평회를 거듭해 북한 주민의 구미에 맞게 재탄생했다. 북한이 말하는 ‘우리식 속성음식’인 것이다. 이 식당이 들어서면서 속성음식이라는 단어 자체도 새로 만들어졌다. 가게의 차림표(메뉴판)를 보면 햄버거 대신 ‘다진 소고기와 빵’, 와플 대신 ‘구운빵지짐’이라는 표현을 썼고 100% 광어로 만든 ‘다진 물고기와 빵’, 지방이 많은 음식을 싫어하는 손님을 위한 ‘남새(채소)와 빵’, ‘다진소고기와빵+감자죽+김치’로된 ‘정식’ 메뉴도 들어 있다.


이탈리아 식당 지배인과 요리사의 요리 유학


북한에는 속성음식점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음식 전문점도 있어서 피자와 파스타 같은 이탈리아 요리도 맛볼 수 있다. 피자와 파스타의 북한식 명칭은 ‘삐자’와 ‘빠스따’이다. 2018년 7월 북한의 인터넷 매체 《조선의 오늘》은 “공화국의 수도 평양의 광복거리, 만경대구역 축전 1동에는 수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특색 있는 인민봉사기지가 있다. 바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이탈리아 요리들을 전문으로 봉사하는 이탈리아 요리 전문 식당”이라고 소개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이탈리아 요리 전문 식당은 개업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식당을 찾은 손님들의 수는 수십만 명에 달하며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오는 단골손님들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처럼 ‘이탈리아 요리 전문 식당’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현지에 유학 가서 요리를 배워온 요리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조업 당시만 해도 북한의 일꾼들과 요리사들에게는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감이 거의 없었지만 그들은 “‘인민들에게 이탈리아 요리를 봉사해주려면 흉내나 낼 것이 아니라 고유한 맛을 그대로 살리라’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심장 깊이 새기고 해당 나라에서 피나는 요리 실습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눈에 핏발이 진 상태에서도 순간이나마 쉴 줄모르는 그들의 이악한 모습에 얼마나 감동되었던지 해당 나라의 이름난 요리사들조차 ‘아마 당신들이 귀국하면 틀림없이 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열성을 다해 현지 요리를 배워왔다는 이야기였다.


24시간 운영되는 식당들도 있다


이탈리아 요리 전문점 외에도 북한에서 서구식 식당들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 10월 말에는 평양 김일성광장 옆에 있는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비엔나 커피숍’이 문을 열었고 2010년 6월에는 싱가포르 회사와 계약을 맺은 햄버거 전문점 ‘삼태성청량음료점’이 평양에 개점한 데 이어 개선청년공원 내에 분점까지 개설했다. 또한 국제구호개발기구 아드라(ADRA)는 2005년부터 평양시내에 ‘별무리 카페’를 운영 중이다. ‘별무리 카페’는 오전엔 커피와 빵을 팔고 오후에는 피자와 파스타를 판다. 김정은 시대에 건설된 평양시 창전거리의 인민극장 옆 ‘해맞이식당’도 세계 각국의 식료품과 요리를 선보이고 있어 평양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2012년 7월에 준공된 해맞이식당은 전면 유리 장식으로 된 현대적인 2층짜리 건물로, 1층에는 슈퍼마켓과 대중 식당, 2층에는 외국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 빵과 케이크집, 커피점이 있다. 한편 2016년에는 평양 전승광장 주변에 2층 규모의 ‘평양초밥전문식당’이 문을 열었다. 이 식당은 100여 명이 식사할 수 있는 대중식사홀, 식사실, 컴퓨터로 주문한 요리를 컨베이어벨트로 받을 수 있는 회전식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민들이 최상의 문명을 최고의 수준에서 누리게 하여야 하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생긴 이 식당은 2018년 문을 연 대동강수산물식당과 함께 회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김양희 | 전공을 살려 식품 전문기자로 일하던 중 운명처럼 <통일뉴스>의 민족음식이야기 칼럼을 쓰게 되었고, 이후 사람들이 친숙한 음식을 통해 북한을 떠올려보길 바라며 <평양랭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되갔구나>라는 책을 발간했다. 독자들과 함께 옥류관에 평양랭면을 먹으러 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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