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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3_6 주예지_안녕, 친구야!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2. 16.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2] 

안녕, 친구야!

주예지

 

안녕, 친구야! 

 

어린이어깨동무 회원이라면 무척이나 친숙한 인사말로 시작해 본다. 특히나 어린이어깨동무 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 회원이라면 안녕, 친구야!’를 외치며 손바닥을 얼굴 옆으로 내보이고 활짝 웃은 단체사진 몇 개쯤 있을 것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환대해주는 순수함과 해맑 음, 무언가 우리가 좋은 관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정겨움을 풍기는 인사말이다.

 

어느덧 2022년 평화상상나래 동아리 활동이 끝이 나고 방학을 맞았다. 동아리 마지막 활동일이 11월이라 그런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덜 났더랬다. 한 해 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평화를 향한 상상의 날개를 펼쳤느냐고 감히 물어보기가 겁나서 은근슬쩍 평화선언문을 작성해 보자고 작은 캔버스와 나무 이젤을 건네 본다. 사실 동아리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부족한 점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일단 모른 척하고 던진다. 한 해 동안 같이 이야기했던 평화를 아이들 자신의 삶 속에 어떻게 녹여낼지 궁금하다. 아이들 사이로 지나다니며 뭐라고 쓰는지 흘긋거린다.

 

 

순간 귀여운 마음에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솔직히 약간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한테 평화는 친구들이야? (웃음)

 

(캔버스를 손으로 가리며) ...

 

퇴근하는 길에 평화를 위해 친구와 함께하고, 사랑하고, 경청하겠다는 말이 마음속에 맴돈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평화를 아이들에게 강조하면서도 사실 나는 평화를 거창하고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고 아이가 작성한 것을 보고 웃었던 건 아닌지 얼굴이 확 붉어진다. 이윽고 궁금증 이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평소에 친구를 좋아하고, 유독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맺고 끊음이 확실한 아이다. 머릿속에 사랑과 우정의 작대기가 난무하는 우리 반 관계도를 그려본다. 이 아이에게 함께하고, 사랑하고, 경청하고 싶은(혹은 해야 할) 친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범주에 속하지 않는 아이들은 이 아이에게 어떤 존재일까?

 

언뜻 보면 평화를 위해 친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중요해 보이지만, 그 이전에 전제되는 것은 결국 누가 친구인가?’와 같은 경계에 대한 문제이다. 담임을 하다 보면 아이들 무리의 경계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오고 가는지 얽히고설킨 우정의 작대기를 지우고 다시 그리는 일이 허다하다. 학기 말이 되면 학기 초에 형성되었던 무리가 그대로 가기도 하고, 무리가 쪼개지기도 하고, 한 명이 떨어져 나오기도 하고, 다른 무리에 들어가기도 한다. 교실은 하나의 작은 사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형성하는 무리의 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여고, 여대를 다니며 여러 무리를 경험한 나에게 더 날카롭게 다가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무리가 생김으로써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기도 하고, 반대로 무리가 생기는 순간 평화가 깨지기도 한다. 무리의 경계 안에 속함으로써 안전함을 느끼기도 하고, 언제 무리에서 내쳐질까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모순된 감정은 무리 내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때로는 무리 밖의 존재를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두와 친구가 되어야 하는 걸까? 각기 다른 서른 명이 모여 있는 반 아이들 모두와 친해지려고 하는 것이 평화를 가져다줄까? 친구와 함께하고, 사랑하고, 경청하는 자세로 관계를 맺는다면,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물며 나와 대립하는 사람과는?

 

우리는 경계를 짓고 무리를 만들고 우리 편과 적을 구분하는 것에 익숙하다. 어쩌면, 오히려 그것이 지금까지 인간을 생존하게 해 준 본성일지도 모른다.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을 구분 짓고 범주화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확장한다. 하지만 때로 폭력은 그 경계에서 발생한다는 것 또한 우리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구분 짓기를 통해 얼마나 많은 폭력과 희생양, 적대와 혐오가 발생하였는가? 결국 누구어떻게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해 허울 좋은 몇 가지 단어로 얼렁뚱땅 넘어가 거나 피하지 않고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재미있는 작품이 또 있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섞어 PEACE 5행시를 만들었다. 1년 동안 이 아이가 겪은 성장기를 떠올리니 ‘anti-fragile’이라는 단어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관계를 맺다 보면 끊임없이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한 교실에 있어도 안녕, 친구야!’ 짧은 인사말도 건네기 힘든 순간이 더러 있다. ‘누구어떻게관계를 맺을 것인지. 열여섯의 최대 난제다. 너와 나 사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주저앉아 있기도 한다. 그 벽에 부딪히는 충격과 불안, 변화를 통해 결국에는 더욱 단단해진 나를 만날 수 있기를.

 

주예지 ㅣ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지내는 국어교사입니다. 살아있는 국어 수업을 꿈꾸지만 여전히 길을 못 찾고 주변을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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